M&A·신사업 투자 '큰 손'이 회사채 시장서도 '큰 손'
입력 2021.07.01 07:00|수정 2021.07.02 10:59
    [2020년 상반기 집계][회사채 주선 순위]
    SK·롯데·신세계 투자 활발한 그룹, 발행도 多
    KT·CJ 등 ‘투자 재시동’ 그룹도 ‘공모채 노크’
    KB證, 부동의 주관 1위…NH·한투·SK證 순
    • 상반기 발행시장은 대기업들의 ‘투자재원 마련’ 성격의 조달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코로나 쇼크'로 조달시장에서 기업들의 유동성 대응 차원의 발행이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최근엔 코로나를 계기로 산업 전방위에서 인수합병(M&A) 및 투자가 활발해진 가운데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기업들이 회사채 조달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단 분석이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1년 상반기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증권사가 주관을 맡은 무보증 공모회사채(일괄신고 제외)는 43조1512억원을 기록했다. ESG채권도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국내 공모채 시장에서 ‘뉴노멀(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이 돼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하반기엔 자금 조달 시기를 조정하는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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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반기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는 SK, 롯데, 신세계그룹 등이 발행그룹 상위권에 올랐다.

      한 크레딧 시장 관계자는 “현재 발행 시장을 보면 투자를 많이 하는 대기업들이 발행도 많이 하고, 지난해처럼 유동성 대응용 조달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며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차입금을 직접 공장 등 시설 설비에 많이 투자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 차환·운영자금 등으로 해 M&A나 투자처럼 복합적인 용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 계열사가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SK그룹은 조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상반기 SK하이닉스는 총 1조1800억원, SK㈜는 6500억원, SK이노베이션과 SK E&S도 각각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SK하이닉스는 ‘10조원 빅딜’인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추진 중이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에 배터리 2공장 설비투자에 착수했다. ‘투자전문회사’를 표방하는 지주사 SK㈜도 이포스케시, 플러그파워 등 글로벌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연이어 M&A 거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신세계그룹도 관심이 쏠린다. 신세계그룹은 상반기 1조17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3조4404억원에 이베이코리아 지분 80% 인수를 최종 확정지었다. 이마트는 올 초 야구단인 SK와이번스 인수를 시작으로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 W컨셉 인수까지 연이어 딜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세계백화점은 국내 1위 보톡스업체 휴젤 인수(약 2조2000억원)를 검토 중이다.

      롯데그룹도 발행시장 ‘큰 손’을 이어갔다. 롯데그룹은 비교적 잠잠한 유통 부문에 비해 그룹의 또 다른 축인 화학분야에 집중적인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수소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고, 롯데정밀화학과 롯데알미늄 등 계열사는 배터리, 친환경 소재 등 신사업 투자를 확대해 사업을 확장해나가겠단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투자 모드’에 진입한 KT, CJ그룹 계열사들도 오랜만에 발행시장을 찾고 있다. AAA의 초우량등급인 KT는 5월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KT는 2023년까지 그룹의 콘텐츠 자회사인 KT스튜디오지니에 4000억원 이상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핀테크 기업인 웹케시에 236억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계열사인 KT스카이라이프는 이달 6년 만에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수요예측에 모집액의의 4배가 넘는 투자금이 몰려 2000억원으로 증액 발행을 검토 중이다. 조달한 자금은 현대 HCN 인수 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해 10월 현대 HCN과 현대미디어 지분 100%를 5201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던 CJ그룹도 다시 ‘돈 나갈 일’이 늘어나고 있단 평이다. 4월 CJ제일제당은 2년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아 2900억원을 발행했다. CJ제일제당은 2018년 미국 슈완스컴퍼니 인수 이후 재무 부담으로 신용 위험이 올랐지만 지난해부터 재무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코로나 특수와 더불어 ‘슈완스 시너지’도 가시화되면서 이달 CJ제일제당은 베인캐피탈의 슈완스 투자 지분 19%(약 4900억원)를 조기 인수했다.

      CJ ENM은 2년 전 오쇼핑과 합병 후 첫 공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CJ ENM은 5월 향후 5년간 콘텐츠 제작에 5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규모 콘텐츠 스튜디오인 CJ라이브시티도 완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CJ그룹은 CJ ENM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인 티빙을 주축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다겠단 포부를 밝혔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신용평가 측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M&A ‘빅딜’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경향이 있다"며 "대규모 딜이 있으면 자금 소요로 바로 ‘부정적’을 달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미래 관점이 반영되는 분위기다. CJ제일제당의 슈완스 건도 비교적 빠른 시간에 M&A 인수 효과가 발현됐는데, 신세계의 이베이코리아 인수도 향후 크레딧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상반기 회사채 발행 증권사 주관 순위에 큰 변동은 없었다. DCM 전체 주관 기준 KB증권이 주관 금액 10조원에 육박하며 부동의 1위를 지켰다.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각각 7조6000억원, 6조원 규모를 주관했다. 일반 회사채 기준으로도 KB증권이 9조원 주관으로 1위이고 NH투자증권이 뒤를 이었다. 지난 1분기 근소한 차로 SK증권에 밀려 4위를 했던 한국투자증권은 3위에 올랐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ESG’(환경·사회·거버넌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달 17일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하는 삼척블루파워는 1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수요 주문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금융사 등 기관들이 ‘탈석탄 경영’으로 수요예측에 불참한 결과다. AA급 포스코 자회사에, 높은 금리를 제시했음에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은 셈이다.

      발행 주관사에도 따가운 눈초리가 이어졌다. 이달 삼척 주민들은 NH투자증권을 상대로 회사채 발행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환경단체 측은 NH투자증권이 속한 NH농협금융지주가 2월 ‘탈석탄’을 선포했음에도 NH투자증권이 회사채 발행을 단독 주관하며 증권신고서에 석탄 관련 불리한 내용을 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주관사 및 인수단 측은 탈석탄 선언 전인 2018년 투자확약(LOC)을 맺은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계약 건은 어쩔 수 없고, 선언 이후부터는 선언을 이행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