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3社, 성장한 만큼 불어난 자금 수요…JV·IPO·유동화 카드 다 꺼낸다
입력 2021.07.22 07:00|수정 2021.07.21 21:14
    SK이노베이션·LGES·삼성SDI
    상반기 출하량, 전년比 두 배 이상
    적시 대응 위한 증설 경쟁 불가피
    美 시장 선점, JV 통해 투자 효율화
    추가 재원 필요…분사·IPO 무게
    • 국내 배터리 3사가 성장 가속화 단계에 접어들며 확장 전략을 위한 곳간 관리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가 줄지어 자체 배터리 전략을 내놓는 가운데 미국 시장의 가세로 경쟁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3사 모두 투자 효율화를 위한 합작법인(JV) 설립은 물론 기업공개(IPO) 등을 통한 대규모 자금 수혈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3사의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두 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에도 전기차 판매량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시장조사 업체 EV 볼륨즈에 따르면 2분기 주요국 전기차 판매량은 144만대로 집계됐다. 올해 연간 전기차 판매량도 600만대를 넘겨 지난해 두 배에 육박할 전망이다.

      시장은 향후 3사의 거점 확장과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성장세가 눈부신 만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적시 대응하기 위해 증설 경쟁이 불가피한 탓이다. 삼성SDI 주가는 뒤늦게 JV 형태로 미국에 진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박스권을 탈출해 전고점을 향하고 있다. 분할 및 상장 카드를 꺼내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할인 우려가 여전하지만 결국 배터리 기대감을 반영해 우상향할 거란 시각이 많다.

    • 역시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시장이다. 유럽에 이은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다.

      그간 유럽과 중국 중심으로 생산 거점을 확보해온 3사는 JV 파트너십을 통한 진출 전략에 차례로 동참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LGES)이 지난 2019년에 이어 GM과 JV 파트너십을 강화한 데 이어 SK이노베이션도 포드와 JV 설립을 준비 중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현재 원통형 전지에서 스타트업인 리비안과, 각형 전지에서 글로벌 4위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합작사 설립을 검토 중이다.

      발효 1년째인 신북미협정(USMCA)으로 인한 관세 우려도 미국 현지 진출을 앞당기고 있다. 미국 전기차 제조사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선 2023년까지 역내 가치 비율(RVC)을 75%까지 맞춰야 한다. 사실상 현지 공급망 확보를 위한 규제란 평이다. 국내 3사 중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수익 구간에 들어간 기업은 LGES가 유일하지만 미국 시장 성장에 올라타기 위해선 2023년 이전에 큰돈을 들여 현지 양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신규 거점으로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하지만 무작정 투자에 나서기엔 여력이 부족하니 JV 형태 진출이 굳어지고 있다. JV는 투자 비용을 합작사와 절반씩 부담하는 동시에 고객사 확보에도 유리한 방안이다. 배터리 생산 설비 투자에는 통상 1GWh당 1000억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간다. 미국에 60GWh 규모 생산 설비를 확보할 경우 배터리 업체와 고객사가 각각 3조원씩 부담하는 식이다. 미국 시장을 기점으로 3사의 JV 파트너십을 통한 해외 진출은 확장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못해도 2025년까지라고 기한을 못 박아 버리면 자체 현금흐름으로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라며 "삼성SDI가 스텔란티스를 잡으면 미국 완성차 3대장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를 잡는 효과가 있어 사실상 막차라는 평이 많다. 미국 진출 없이는 생산 거점의 80% 가까이가 유럽에 편중돼 밸런스가 깨진다는 고민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JV를 통해 효율적으로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추가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많다.

      LG화학에 이어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사업부 분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분할 방식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은 물적분할을 통한 기업공개(IPO) 추진에 무게를 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LG화학과 마찬가지로 분사 이후 배터리가 빠지게 된 모회사가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실탄도 제공해야 한다.

      합작 투자를 감안하더라도 필요 생산 설비 규모 자체가 대폭 불어났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 예상 생산 능력을 200GWh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생산 능력은 약 40GWh 수준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16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하지만 재무 상태가 받쳐주기 힘들다는 우려가 높다. LGES의 경우 2025년 예상 생산 능력이 450GWh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하반기 상장을 통해 기대되는 현금 유입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배터리 소재부터 생산 공정,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과 재사용 등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ESG 성과 압박도 심화하고 있다. 통상 규제로 공급망 관리에 나선 미국과 유럽 시장에선 거점 별로 자체 수급선도 마련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명확한 승자가 없는 만큼 연구개발(R&D) 비용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배터리 공급난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까지 3사는 증설을 통한 시장 선점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단기간 내 변수가 복잡 다양해지며 하반기 이후로는 어떻게 투자 및 조달 전략을 꾸려갈지가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시장이 확대하며 LGES에 이어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가 순차적으로 JV에 나선 것처럼 주식자본시장(ECM)을 활용한 대규모 조달도 3사 모두의 선택지에 오를 거란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3사 모두 그린론 등 방식으로 해외 생산법인에 투입할 돈을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도 있고 ESG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지만 ECM을 통한 조달이 유달리 파격을 준다"라며 "이 때문에 그간 수익성 위주 전략을 유지한 삼성SDI가 그룹 계열사 보유 지분을 유동화에 나서는 방안 등 시장에선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