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심사 지지부진한 대우조선 M&A…선거철 앞두고 판 흔드는 정치권
입력 2021.07.26 07:00|수정 2021.07.27 14:14
    현대重-대우조선 기업결합 심사 지연
    EU, 사실상 '합병은 독과점' 결론 분위기
    정치권서도 선거철 민심잡기 카드로 활용
    여당 대표 등판 예고에 정치공방 예상
    •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가 기약 없이 지연되는 가운데 정치권도 양사 인수합병(M&A) 문제에 관심을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대우조선해양 노조, 경남 지역사회가 합심해 합병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데 이어 합병 문턱이 재차 높아질 거란 전망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 작업이 결합심사 단계에서 지지부진하다. 현재 싱가포르·중국·카자흐스탄으로부터 기업결합심사를 통과, EU와 일본 그리고 한국 공정위의 심사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특히 유렵연합(EU) 심사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6월만 해도 중간심사를 통해 기업결합과 관련해 경쟁 제한 우려는 해소됐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후 해당 심사를 세 차례나 일시 유예해 왔다.

    • 해운업계에 따르면 EU에선 사실상 '합병은 독과점'이라 판단, 불승인으로 결론 낸 상황으로 파악된다. 유럽 선사들 내에서도 "EU가 기업결합을 승인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황상 내년 상반기까지는 결합심사를 마무리짓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사가 사실상 글로벌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점이 EU 측의 주요 논리다. 현재 양사의 LNG, VLCC, VLGC 등 주요 선종 수주 점유율은 60.9% 수준이다. EU 반독점법에 따르면 시장점유율 40%를 넘을 경우 시장 과점으로 판단하는데, 양사의 합산점유율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글로벌 조선해운 분석기업 'TreaBoat Research'에 따르면 지난 2년간 LNG선과 VL탱커, 84K급 이상 LPG 선박에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양사 합계 수주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174K급 이상 멤브레인형 LNG선의 경우 61.5%에서 최근 82.4%까지, 300K급 이상 VL탱커선(VLCC) 분야는 58.4%에서 74.2%까지 점유율을 키웠다. 84K급 이상 대형 LPG선(VLGC)의 경우도 같은 기간 56.3%에서 78.3%의 합계 점유율을 가져갔다.

      지난 4월 합병이 무산된 크루즈 조선소 핀칸티에리-아틀란티코(STX프랑스) 사례에서도 대형 크루즈선 시장에서 두 조선소 간 합계점유율이 50%를 넘겼다는 점이 취소 근거가 됐다. 해운업계 내에선 EU가 세 선종으로 독과점 심사를 더욱 확대할 준비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선업황 흐름이 2년 전 매각 발표 당시와 비교해 호조세를 보이고 있어 기업결합 통과 명분은 더욱 약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정치권에서도 선거철을 앞두고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을 지역 민심 확보용 카드로 활용하려는 조짐이 엿보인다. 경남 표심을 둔 정치공방이 예상된다.

      하반기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업은행의 주요 거래가 타깃이 될 것이란 평가다. 매각이 확정됐음에도 극심한 노조 반발로 거래 잡음이 일고 있는 대우건설 사례와 함께 대우조선 M&A를 정치권에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두 거래 모두 산업은행이 급하게 추진했다가 잡음이 불거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조선업으로 묶여있는 거제와 창원, 통영뿐 아니라 경남 전역에서 매각 반대 목소리가 크다. 노조 반대는 물론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합심해 매각 철회 요구에 나섰다. 매각된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 직·간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80%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 논리다.

      여기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직접 등판해 판을 키울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으로선 '성 비위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을 내준 데 이어 최근 경남 지역까지 '대선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무너진 상황이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으며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내년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정치적 공세 빌미를 제공, 대선 경선 과정에서 악재를 마주한 만큼 이를 타계하기 위한 해법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야당 소속 지자체장들까지 공동행동에 나섰다. 서일준 국회의원(국민의힘)은 "부울경 지역의 조선기자재 산업 전반에 큰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했고, 김용운 거제시의회 의원(정의당)도 "거제시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단체가 조건부승인 시도 자체를 거부하고 항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 여당에서 대우조선 M&A를 두고 당 차원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송영길 대표를 포함해 고위급 간부들이 스터디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야권에서도 경남 표심을 잡기 위해 관련 발언을 늘리고 있다. 대우조선 M&A가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공방에 활용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부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으로 전해진다. 올해 EU와의 접촉을 더욱 늘리며 결합심사에 대비해왔지만 최근엔 합병 실패를 감안한 시나리오도 열어놓고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