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 있으면 24兆?…추상적 비전만 가득했던 크래프톤 간담회
입력 2021.07.27 07:00|수정 2021.07.28 07:55
    도전정신, 협업 등이 차별점?…"자소서 같다"
    배그 성공과도 무관…"내부 시행착오 상당했다"
    플랫폼·한국 환경 등 제시에도 피로감 호소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내달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진행된 크래프톤 기자간담회에 대한 인상평이다. 간담회 내내 '도전정신', '한국이란 글로벌 문화 창작의 환경', '인터랙티브 버추얼 월드'(Interactive Virtual World) 등 추상적인 단어들이 반복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자기소개서 같다", "향후 성장성을 가늠할 이렇다 할 비전이 없었다"고 평을 내놓았다.

      '배틀그라운드의 성장 스토리'는 오히려 '스타트업의 기업 문화가 필연적으로 과실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주는 사례로 회자되는 분위기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앞두고 경영자들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진다. 크래프톤이라는 조직을 설명하는 데 제시된 '도전정신'과 '똘끼'(또라이기질) 등의 단어들이 최대 기업가치인 24조원을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다.

      26일 크래프톤은 온라인상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통해 타 게임사와의 차별점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명작 개발에 집중하는 도전정신 ▲글로벌 협업 능력 ▲동서양의 문화를 고루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잘 활용한 양질의 콘텐츠 생산 능력 등 3가지를 꼽았다.

      업계에서는 '자기소개서 역량 부분'에 쓸 만한 내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해당 내용과 관련해 "공모전 등 하나의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나서 자신감이 붙은 한 학생이 자기소개서에 역량을 갖다붙인 느낌이다"라며 "미래 성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비전'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의 차별점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도전정신'으로 소개된 크래프톤의 기업문화가 배틀그라운드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크래프톤의 기업문화는 배틀그라운드의 발목을 잡는 '빌런'에 가까웠다. 이는 이달 출판된 책인 <크래프톤 웨이>(2021)에 자세히 묘사돼있다. <크래프톤 웨이>는 현직 기자인 저자가 크래프톤 내부 이메일 전문 등을 확보해 구체적이고 담백하게 크래프톤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의 전세계적 성공 덕에 위기를 모면하며 한국의 대표적 유니콘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금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경영진과 개발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개발자 사이의 갈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

      장병규 대표는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앞두고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PD) 김창한 님의 자신감이 맞다면', '조작 안내가 부족해 유저들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진입장벽이 높다' 등 우려를 표했다. 물론 자금 상황 악화에 따라 직접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보수적인 접근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 장 대표가 배틀그라운드 출시 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정황이 읽혀지는 건 사실이다.

      내부적으로도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을 점치지 못했다. 출시 전 블루홀 사업 개발실은 한국의 코어 게이머 5명에게 배틀그라운드를 미리 해보게 했다.  평가자 대부분은 낙제점을 줬다. 십분 양보해 '스타트업의 시행착오'라고 보더라도, 크래프톤의 도전정신이 지금의 기업가치를 만들어낸 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장 대표는 "크래프톤은 똘끼(또라이 기질)가 있다. 엔씨소프트나 넥슨 중 그 누구도 인도라는 시장에 먼저 접근하지 않지만 크래프톤이니까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라는 글로벌 문화 창작의 환경을 차별점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뜬금없다'란 평가다. 글로벌 1위 1인칭 슈팅게임(FPS)인 배틀그라운드의 전세계적 경쟁력 덕에 투자를 결정하는 투자자들이 많음에도 크래프톤은 비결이 한국 창작 환경이라며 그 공로를 돌렸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창작의 비결이 한국이라면 블루홀 시절 구조조정이란 아픔은 없었을 것"이라며 "차라리 개발 능력을 더욱 강조했더라면 좋았겠지만 한국이란 환경을 강조한 건 의문이었다"라고 말했다.

      팬덤을 한 곳으로 모으는 '플랫폼'을 투자 포인트로 제시한 부분에선 지난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평가가 나왔다. 크래프톤은 게임이 가장 강력한 미디어가 될 것임을 믿으며 팬들이 경험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순간들을 무한히 연결하는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빅히트는 합종연횡과 협력을 통해 기어코 위버스를 플랫폼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상장을 위한 구호에 불과했다'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크래프톤은 어떤 미래를 보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