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發 3강구도 재편되는데…사업만 집중하긴 힘든 삼성전자
입력 2021.08.03 07:00
    인텔, 새 기술 로드맵 발표…"삼성전자 잡겠다"
    3파전 구도…팹리스·장비 확보전 치열해지는데
    TSMC보단 삼성전자에 경쟁 부담 더 커질 전망
    이 부회장 거취 등 사업에만 집중하기 힘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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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판 뒤집기에 나서며 TSMC와 삼성전자 중심의 경쟁 지형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장기 고객 유치부터 핵심 장비 반입까지 글로벌 1위 TSMC는 물론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인텔까지 상대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삼성전자는 사업에만 집중하기 힘든 여건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인텔은 지난 26일 기술 전략 설명회인 '인텔 엑셀러레이티드'를 열고 2025년까지의 새 반도체 공정 로드맵을 내놨다.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한 종합 반도체(IDM) 2.0 전략의 일환으로, 사실상 삼성전자와 TSMC와의 주도권 경쟁에 나서겠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회로 선폭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로 경쟁해왔다. 공정을 미세화할수록 1장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고효율·저전력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어 성능과 원가 경쟁력에서 앞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노미터(nm) 단위 프로세서 노드 명칭을 통해 공정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해 5nm 공정에서 경쟁하고 있다. 반면 인텔은 이제야 10nm 공정 성숙기에 진입했고 EUV 스캐너를 적용한 양산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공정 미세화 경쟁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사실상 TSMC와 삼성전자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텔은 이번 설명회를 통해 nm 단위 표기를 버리고 '인텔+숫자' 방식의 새로운 표기법을 발표했다. 몇 nm 공정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간의 입장을 반영하는 동시에 성능 중심으로 경쟁 구도를 뒤바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동일 웨이퍼 면적 대비 트랜지스터 밀도는 인텔의 10나노 공정이 삼성의 7나노 공정을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표기법 기준으로 인텔은 2024년 인텔 20Å 공정에 진입한다. 문자 Å(옹스트롬)은 0.1nm 단위로, 삼성전자와 TSMC와 비슷한 속도로 2nm 공정에 진입한다는 의미다. 아직 EUV 노광 공정을 적용하기도 전인 인텔이 2nm 진입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느냐를 떠나서 2025년 이전에 삼성전자와 TSMC를 따라잡겠다고 선전포고한 셈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장비 수급과 고객사 확보 경쟁이 전에 없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객사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와 핵심 장비 공급사는 그대로인데 파운드리 업체만 늘어났다. 

      실제로 주요 팹리스도 인텔의 파운드리 드라이브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텔은 퀄컴과 아마존웹서비스(AWS)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각각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클라우드 시장을 대표하는 고객사다. 파운드리 산업에서 AP와 클라우드는 각각 기존 주력 시장과 미래 성장 동력으로 통한다. 

      팹리스에 인텔 파운드리가 새 선택지로 부상한 이상 직접적인 부담은 TSMC보단 삼성전자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연초만 해도 TSMC의 가동률이 100%에 달하며 대안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선택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삼성전자 대신 인텔이란 대안이 마련됐다. 더군다나 글로벌 주요 팹리스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고, 인텔은 미국판 반도체 굴기에서 제조 역량 강화를 담당하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파운드리 선단 공정 수요가 기존 모바일 AP에서 클라우드, 자율주행 칩 등 다양한 응용처로 확대하고 있고 TSMC 설비는 모자라니 삼성전자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게 연초까지 시장의 기대감이었다"라며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인텔, 팹리스가 공동의 이해관계를 구축하면 괴로워지는 건 TSMC보다 삼성전자"라고 지적했다. 

      장비 확보 문제도 마찬가지란 평이다. 현재 10nm 이하 선단공정에 진입하기 위해선 네덜란드 ASML사에서 독점 공급하고 있는 EUV 노광 장비를 들여와야 한다. 관련 업계에선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대만이 전체 생산 물량의 43%, 한국이 44%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텔이 EUV 스캐너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지원에 나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EUV 형성 기술은 미국이 독점 개발했고, 이를 근거로 중국 SMIC가 ASML에서 EUV 노광 장비를 납품받는 걸 막아버렸다"라며 "작년만 해도 삼성전자 입장에선 SMIC 추격을 미국이 대신 막아준 모양새인데, 이제 미국도 ASML 장비를 가져가겠다고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 

    • 불과 반년 만에 반도체 시장 지형이 급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삼성전자가 사업에만 집중하기 힘든 환경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반도체 전략은 시장의 의구심만 자아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 문제는 선거철 정치인들의 표심 잡기 이벤트로 전락한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관련 업계에선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반도체 시장 내 지위도 실적도 강력하지만 주가는 맥을 못 추고 투자자들은 조급증을 느끼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부흥 청사진에 비하면 한국의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인텔의 행보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심해 내놓은 법안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와 떼놓고 보기 힘들다. 한국 버전인 K-반도체 전략의 경우 대기업 호주머니에서 나올 투자액을 총정리해놓은 것에 불과하단 비난이 적지 않다. 

      가석방 시한을 다 채운 시점에 이 부회장 거취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일된 입장이 없는 점도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가석방이 현실화할 경우 정부 차원에서 미국 반도체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는 반도체 위기론을 이유로 이 부회장 가석방을 요구하는 측도 마찬가지다. 

      정작 시장에서도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고 인텔의 추격을 저지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잠재 매물 가격과 설비투자 비용이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가파르다. 

      그럼에도 투자자를 중심으로 시장에선 가석방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가 M&A 등 시장 상황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지속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야 삼성전자의 자원이 오로지 글로벌 경쟁에만 집중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시장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반도체 지원 정책이 특정 기업 특혜 의혹을 떠나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는 논리에 합의를 이뤄냈지만 한국에서는 이 부회장 없이도 괜찮다, 아니다 수준에 그치고 있다"라며 "기업 입장에서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