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스타트업·VC '콤비', 모더나와 플래그십
입력 2021.08.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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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로나와의 전쟁도 어느덧 20개월에 접어 들었다. 그 전면엔 역사가 10년에 불과한 보스턴의 스타트업, 모더나가 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모더나라는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모더나는 약 20개의 신약·백신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단 하나도 받지 못해 일반인이 약국에서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트랙레코드가 전무했던 이 스타트업은 지난해 1월11일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발표하자, 단 이틀만에 염기 서열을 확정하고 백신 개발에 나서면서 알려지게 된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월7일엔 첫 임상 배치를 완료하고 분석 테스트를 했고 2월24일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 전달, 임상 실험을 시작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마침내 연내에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

      이런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모더나의 창업 과정을 살펴보자. 모더나는 하버드 의대 조교수인 데릭 로시(Derrick Rossi) 박사가 창업했다. 그는 몰타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으며,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했다. 하버드 의대에서 조교수가 된 데릭 로시는 평소 관심 대상이던 mRNA(메신저 리보핵산)를 활용해 줄기 세포를 재설계하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는 이웃 학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밥 랭어(Bob Langer) 교수를 찾아간다. 랭어 교수는 본인의 이름을 딴 ‘랭어랩’에서 지금까지 40개가 넘는 벤처를 창업한, 소위 스타트업의 고수이다. 하버드와 MIT의 두 교수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보스턴의 바이오 벤처캐피탈(VC)인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nering)의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회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아페얀 회장은 mRNA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좀더 대범하게 ‘mRNA를 주입해 환자가 몸속에서 스스로 치료제를 생산하면 안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mRNA를 기초로 우리 몸속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공장을 지어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다. 기존에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접근에 가치를 두는 아페얀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조언이었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플래그십VC의 자체 인큐베이터인 플래그십 벤처랩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시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테스트한다. 이를 위해 하버드와 MIT 전문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자문을 구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잭 조스탁(Jack Szostak) 하버드 교수의 연구소에서 젊은 연구원들을 스카웃하며 시제품 연구를 가속화한다.

      젊은 연구원들은 연구의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과거에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지만, 반대로 그만큼 많은 특허 등록이 가능했다.(모더나는 260개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게 ‘LS18’이라는 시제품이 만들어졌고, 마침내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에서 투자를 받아 2010년 ‘보스턴 캠브리지’에서 독립을 한다. 연구원들은 창업 멤버로 모더나에 합류한다. 아페얀 회장은 플래그십 벤처랩 졸업 이후에도 모더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11년 창업자였던 데릭 로시 교수는 줄기세포에 더 큰 꿈을 품고 회사를 떠났다. 그는 이후 보스턴에서 줄기세포 관련 스타트업을 3곳 창업했다. 아페얀 회장은 대체자를 찾는데 고심했고, 삼고초려 끝에 스테판 방셀(Stephane Bancel)을 경영진으로 영입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던 바로 그 CEO이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는 박사(Ph.D) 학위가 없는 하버드 MBA 출신으로 일반적인 제약사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에서 근무했지만 생산·제조 담당 임원이었고, 모더나에 오기 전에는 진단기기 스타트업의 CEO였다.

      아페얀 회장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모더나는 플루 백신을 개발했지만, 10개가 넘는 위탁생산(CMO) 기업들로부터 생산 요청을 거절당하는 등 어려운 시기가 계속됐다. 그러나 방셀 CEO는 비전을 갖고 묵묵히 연구 개발을 지속했다. 2018년에 우여곡절끝에 모더나는 ‘MRNA’라는 티커로 나스닥에 상장됐고, 시가총액이 4조원 수준으로 지지부진(?)할 때도 유전자 가위 등 다른 영역으로 한눈 팔지 않고 오직 mRNA 한우물만 팠다.

      코로나 터졌을 때, 모더나는 이미 mRNA 기반의 백신을 생산해 대응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가 아닌 ‘스타트업’ 모더나에 도움을 요청하고, 2020년 3월 워프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 OWS)을 함께 시작한다. 한화로 약 1조원을 모더나의 백신 디자인과 테스트에 지원했고,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참고로 화이자는 이러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참고로 캐나다 국적이자 캐나다 맥길 대학을 졸업한 아페얀 회장은 투르두 캐나다 총리에게 직접 모더나를 소개했고, 캐나다 정부는 모더나와 백신 조기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성공의 열매는 달콤했다. 모더나의 기업가치는 현재 100조원이 넘었고, 아페얀 회장은 플래그십 VC와 함께 지난 2월 1조5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매각했지만 여전히 3300만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가치가 9조원에 달한다. 공동 창업자인 랭어 교수의 지분 가치는 2조원이 넘는다.

      모더나는 지난달 21일, S&P500 지수에 편입됐다. 모더나의 성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보스턴 생태계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모더나는 자체적으로 투자 조직을 만들어서 보스턴의 스타트업들에 직접 투자를 했다. 보스턴의 VC들은 mRNA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고 RNA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제2의 모더나를 찾고 있다. 올해 6월에는 MIT의 바이오엔지니어링 출신들이 창업한 mRNA 스타트업 ‘스트랜드테라퓨틱스(Strand Therapeutics)’가 5200만달러의 시리즈A 투자를 받기도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모더나, 그리고 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자.

      일반적으로는 스타트업 투자 과정에서 창업자 혹은 CEO가 VC들을 돌아다니며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다수의 VC들에게 투자를 받는다. 반면 보스턴에서는 창업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함께 풀어줄 VC를 찾는다. 진정성을 갖고 고민을 함께 할 한 두곳의 VC를 선택하고 투자를 받는다. VC들은 다소 무모한 아이디어라도 경청하고, 전문가들의 레퍼런스를 통해 기술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배짱있게 투자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믿고 기다려준다. 이러한 자본은 하버드, MIT, 터프츠(Tufts) 등 지역 대학의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온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이후 M&A 및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형태로 생태계에 재투자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이런 범접할 수 없는 보스턴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모더나의 혁신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