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가석방 직후 쏟아낸 삼성의 240조 투자…내용도 효과도 '모호'
입력 2021.08.27 07:00
    이재용 가석방 11일 만에 사상 최대 투자 발표
    지난 3년보다 60조 늘어난 240조…국내만 180조
    시장 예상치 웃돌지만 구체적 내용 없어 '모호'
    내년 3nm 경쟁 본격화…국내투자 효용 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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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출소 11일 만에 삼성그룹이 단일 기업 역대 최대 규모인 24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인 데다 상당 부분이 국내에 투입될 예정이다.

      세부 투자 내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투자 계획의 대상과 시기, 효율 등 모호한 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그룹은 24일 발표한 계획에 따라 3년간 전략 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반도체와 바이오·차세대 통신 및 신성장 IT 업계에 240조원 투자에 나선다. 전체 투자 규모는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집행한 180조원보다 60조원 늘어났다. 특히 국내에만 지난 계획보다 50조원이 늘어난 180조원을 투자한다는 설명이다. 사실상 늘어난 투자 금액의 상당 부분이 국내 몫으로 배정된 모양새다. 

      투자 계획 발표가 갑작스러웠던 데다 당초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며 시장에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정부의 K-반도체 전략과 함께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메모리 2030 전략이 최초 발표된 지난 2019년 대비 약 38조원이 확대됐다. 당시 반도체 업계에선 10년 동안 38조원 수준의 투자 확대는 경쟁사 동향에 비춰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번 계획은 그룹 전반의 3년간 일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승 폭이 가파르다. 늘어난 60조원은 연간 기준으로는 20조원을 더 투자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중 대부분이 국내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룹 전반이 3년 동안 연간 60조원을 국내에 투자해야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공유되지 않은 가운데 마땅한 투자처가 있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그룹에서 가장 단위별 투자 규모가 큰 사업은 단연 반도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국내와 해외를 합한 총 투자금액이 약 60조원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약 38조5000억원 규모 시설투자와 21조2292억원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집행했다. 약 4조원 수준 디스플레이 부문 시설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반도체 몫이다. 

      다른 투자처로 지목된 바이오 사업 역시 반도체만큼 투자 단위가 크지 않다.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한해 증설 규모는 4조원을 넘기기 힘든데다 대부분이 해외를 향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결국 늘어난 투자금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에 집중될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마저도 모호한 구석이 많다는 평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선제적 투자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정도가 될 것이고, 결국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늘려야 계획된 투자 볼륨을 갖출 수 있다"라며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미국 현지 설비투자 중요성이 높아지는데다 M&A 대상도 대부분 해외에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경쟁사 수준으로 R&D 투자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메모리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비메모리 반도체 역시 고객사를 확보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설비 투자를 늘리는 데 따른 위험 부담이 큰 편이다.

      TSMC는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연 매출액의 8.5%를 R&D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 역시 약 8% 안팎이지만 파운드리로만 좁힐 경우 TSMC에 비해 절대적 수치는 작은 것으로 추정된다.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들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소재·공정 부문 R&D 수요는 계속 확대하는 실정이다. 

      이 경우에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최대 경쟁사인 TSMC와의 3나노미터(nm) 공정 경쟁이 내년부터 본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투자 확대 시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TSMC가 선단 공정에 진입한 유일한 업체임에도 7nm와 5nm 공정에서 양사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라며 "양사 공정 기술이 나뉘는 3nm 구간에서 삼성전자가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현시점에서 국내 투자 계획을 대폭 늘리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시장 일각에선 대규모 투자 방향성을 제시하며 이 부회장 공백기 동안 정체된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51.70%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삼성전자 주주들이 이 부회장 복귀를 빌미로 급작스레 불어난 투자 계획을 두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25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0.13% 상승한 7만5700원으로 마감했다. 이 부회장 출소 자체를 호재로 반영하는 삼성물산이 전일보다 1.52%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투자 주체에 포함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SDI도 각각 약보합세를 보이는 데 그쳤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투자 확대로 인한 직접적 수혜가 예상되는 중소형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를 제외하면 이번 투자 발표가 당장 삼성 그룹의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거란 평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