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고도화 맞춰 배터리 외 사업 연계 강화
내년부터 배터리 이어 '반도체' 중요도 부각 전망
모빌리티 대응 전략 따라 기업가치 재평가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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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전기차와 배터리 사업은 주요 그룹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향후 수년 동안 매해 두 배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예정인 가운데, 내년부터는 배터리 외 사업과 모빌리티 시장의 연계가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자율주행 등 사업 고도화와 함께 배터리를 제외한 반도체·5G 통신망·IT 기기와 소재까지 모빌리티 대응 전략을 갖춘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가치 재평가가 가속화할 거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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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EV볼륨즈'에 따르면 3분기 누적 기준 플러그인 전기차(PEV)의 침투율은 7.7%다. 3분기까지 판매된 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 차량(PHEV)과 순수 전기차(BEV) 판매 비중이 7.7%에 달한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북유럽 국가 침투율은 40%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노르웨이는 70% 선을 돌파했다. 한국의 PEV 침투율도 20%를 넘겼다.
지난 3분기까지의 집계를 기준으로 연간 PEV 판매량은 680만대를 넘길 전망이다. 연초 전망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은 물론 지난해와 비교해 약 110% 성장한 수치다. 모빌리티 시장에 공급될 연간 배터리 용량은 약 280GWh 규모로 당초 기대의 50% 이상을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대외 여건 불확실성에도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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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빌리티 산업에서 국내 기업 지형도는 크게 전기차를 만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배터리를 만드는 삼성·LG·SK그룹으로 나눠진다. 내년부터는 이 시장에서 얼마나 확장성을 갖추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 순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
올 들어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은 각각 애플카 파트너로 부상하며 주가가 오르내렸다. 빅테크와의 협력 기대감에 따른 일시적 소동이란 평도 있었지만, 모빌리티 시장에 대한 대응 전략과 경쟁력이 기업 가치를 좌우하게 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경우 애플카 논란 이전에도 전기차 경쟁력을 드러내며 기업 가치를 대폭 확장할 수 있었다.
관련 업계에선 내년부터 배터리에 이어 반도체 사업의 중요도가 크게 부각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현대차와 같은 전통 완성차 업체와 테슬라 등 미래차 기업의 주가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장화 추세로 늘어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공급망 차질로 이어진 상황이다. 전통 완성차 시장의 덩치가 큰 만큼 감산으로 인한 실적 우려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 모빌리티 설계 능력에서 테슬라가 압도적 역량을 보유한 덕에 재난을 피해갔다는 지적이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 기업의 생산 체계가 테슬라에 비해 방대해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는 얘기가 틀린 건 아니지만, 차량 설계 기술 격차가 더 결정적인 것 같다"라며 "모빌리티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차량 설계와 반도체 기술력 등 테슬라와 격차가 나타나는 지점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역시 보유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순차적으로 통합 제어기와 무선 업데이트(OTA) 기술을 적용시키며 차량 설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단순히 전장화율이 높아지며 필요한 아날로그 반도체 개수가 증가하는 것 이상으로 주행 정보를 수집·저장·분석할 이미지 센서, 메모리, 프로세서칩 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역시 모빌리티 시장에 맞춰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전기차가 새로운 응용처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레벨5 수준 자율주행 차량에 필요한 메모리 자원이 스마트폰의 10배에 달할 거란 분석도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가 테슬라의 혁신 방향을 따라가고 있다 보니 자율주행 기술 완성도에 맞춰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가리지 않고 모빌리티 비중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차량 내 탑재되는 반도체뿐 아니라 인프라 차원 수요까지 더해 기존 반도체 사업에서 모빌리티의 존재감이 점점 확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까지 미래차 스타트업과 전통 완성차 업체를 가리지 않고 협력 관계를 구축한 배터리 3사 역시 경쟁의 판이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LGES)과 SK온, 삼성SDI는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모빌리티 기업의 장기 공급계약을 확보했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한 고객사 확보가 한 차례 마무리된 만큼 내년부터 3사는 본격적인 증설에 나설 전망이다. 양극재·음극재 등 핵심 소재 사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지분투자도 한창이다. 모빌리티 시장에 맞춰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 사업으로 확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사업을 발판으로 각사가 보유한 사업 포트폴리오와의 연계가 구체화할 거란 기대감이 높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각 그룹의 모빌리티 사업 전략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제조업 트렌드에 머물러 있다는 평도 있다. 통합 운영체제(OS) 등 소프트웨어(SW) 개발에 뛰어들어 데이터 사업을 위한 청사진을 밝힌 것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각사 보유 사업 포트폴리오의 새로운 수익처를 모빌리티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올해까지 배터리 사업에 집중했다면, 내년 이후로는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확장성에 대한 고민이 커질 것"이라며 "배터리 사업에서 확보한 고객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른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장 발판으로 삼거나 사업 확장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SK그룹은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를 핵심 파이프라인 삼아 배터리 사업을 가장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 현지 배터리 사업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통신 계열사의 5G 통신망 관제 사업이나 에너지 계열사의 충전소 사업 등과 연계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최근 배터리 시장에서 SK의 약진이 삼성과 LG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그간 보수적 기조를 청산하고 적극적 투자에 나설 거란 관측이 나온다. LGES 최고경영자(CEO)로 그룹 2인자 권영수 ㈜LG 부회장이 선임됐다. 두 그룹 모두 배터리 사업의 존재감과 체급을 키우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올해 캐나다 차부품사 '마그나'와 JV를 결성하며 전장 사업으로 뱃머리를 튼 LG전자가 애플과 협력하며 가장 빠르게 위상을 키울 거란 기대감도 꾸준히 제기된다. LG그룹은 배터리 외에 파워트레인, 카메라 모듈, 디스플레이와 소재 사업까지 핵심 부품 사업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국내 그룹사가 제2의 폭스콘 모델을 따를 것이냐는 논쟁도 있지만, 빅테크와의 협력이 성사될 경우 모빌리티 시장에서 현대차보다 존재감이 커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