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지 대규모 투자와 함께 빅 테크 협업 기대감
산업 급변기…변화 올라타야 '1위 비전' 달성 가능
파운드리 새 고객사 외 삼성전자만의 확장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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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아마존 등 빅 테크 수장과 만나며 '뉴삼성'에 대한 기대감이 치솟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 목표가 이 부회장 방미 성과에 달려 있는 탓이다. 산업 전반 반도체의 쓰임새는 복잡 다양해지고 있다. 어떤 전략을 내놓느냐에 따라 미래 시장에서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삼성전자의 역할이 단숨에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 14일 5년 만에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사이타 나델라 MS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와 차례로 만남을 가졌다. 23일(현지시간)엔 삼성전자 경영진이 미국 내 새로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부지를 텍사스주 테일러 시로 확정하고 170억달러(원화 약 20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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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을 확정 짓고 빅테크 수장과 접촉한 것을 두고 '뉴삼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는 지난 2018년과 2020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 기대감을 제외하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지만, 파운드리 사업에서 1위 TSMC와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시스템 반도체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반도체 시장 변화로 인한 기회를 흡수하지 못하고 메모리 업황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메타버스 등 디지털 전환 가속화 흐름에 따라 반도체의 쓰임새가 대폭 확장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달 동안 엔비디아 주가는 60% 이상 급등했다. 최근 주가 상승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인공지능(AI)에 이어 종합 컴퓨팅 기업으로 정체성을 지속 확장한 덕으로 풀이된다. 산업 변화로 인한 반도체 역할 확대에 비해 삼성전자는 여전히 메모리 1위, 파운드리 2위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최근 행보는 AI 개발 패러다임 변화나 테슬라가 자체 설계한 D1 칩 이후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볼 수도 있다"라며 "삼성전자의 경우 확장성을 보여줄 재료는 많은데 과거에 비해 선제적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 지가 오래된 터라 이 부회장의 이번 방미 일정에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방미 일정을 통해 언급된 '뉴삼성'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삼성전자 역시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 시장에서 각각 1위에 올라선 것도 지금과 같은 산업 격변기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개인용 컴퓨터(PC)와 모바일 기기 보급 확대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D램과 낸드의 양산 체제를 구축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선두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반도체의 쓰임새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결과라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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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장 상황이 당시와 닮았다는 분석도 늘어나고 있다. 시장 자금이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디지털 전환 수요에 쏠리는 상황에서 순수 파운드리 업체인 TSMC나 설계 전문 기업인 팹리스에 비해 IDM인 삼성전자의 기회가 부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TSMC와 미세공정에서 경쟁하는 유일한 IDM인 동시에 메모리 반도체 이외 다수의 전 세계 1위 부품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전방에서 빅테크가 메타버스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기기로 XR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경우 디스플레이부터 이미지 센서(CIS), 5G, 메모리 반도체와 주문형 반도체(ASIC)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 성과가 파운드리 사업의 고객사 확보에 그쳐선 안 될 거란 시각도 있다. 위탁 생산 사업 외 새로운 반도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달성하기 어려운 탓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3나노미터(nm) GAA 공정에서 TSMC를 따라가기 위한 무리수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7nm 공정 이후 충분한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탓"이라며 "방미 이후 빅테크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것을 넘어 협업을 통해 삼성전자의 설계 역량을 고도화할 수 있다면 넘어 AI 반도체 등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