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접어든 LG-SK 배터리 조달 전략
입력 2021.11.30 07:00
    분할상장 목표는 동일…지주 부담 줄이고 시장 활용
    LGES IPO 앞두고 SK온 분사 직후 3조 프리IPO 검토
    국내 직상장 약속한 LG와는 다른길…주주 반발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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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비슷한 행보를 보이던 LG그룹과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이 성장을 위한 재원 마련 과정에서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선두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LGES)과 추격자인 SK온의 조달 전략에서 양 그룹의 자본시장 접근 방식 차이도 두드러진다는 평이다. 추격자인 SK온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에 나서며 이후 시장에서 양사 배터리 사업의 지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차화정' 대표주자였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다음 10년을 위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각각 2020년 12월과 2021년 10월, 10개월 차이로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ES와 SK온을 100% 자회사로 출범시켰다. 

      물적분할의 목표는 동일하다. 지주사 ㈜LG와 SK㈜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에서 실탄을 확보하는 것. 지난해 상반기 LGES 전기차 전지 부문이 손익분기점(BEP)을 넘겼고, SK온도 내년 흑자전환을 예고하고 있지만 지주의 유상증자로 감당하기엔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지난해만 해도 매해 3조원 규모로 예상되던 설비투자 비용은 올 들어 4조~5조원까지 불어났다. 

    • 분할 후 기업공개(IPO) 추진까지 똑닮았던 계획은 이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분사를 검토 중이던 LG화학은 프리IPO 선택지를 포기했다. 당시 LG화학은 곧 분사할 배터리 사업 가치를 약 20조원 수준으로 책정해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재무적투자자(FI)와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반기 핵심인 전기차 전지 부문에서 흑자 전환하며 직상장의 길이 열렸을 땐 모회사 주가가 치솟은 터라 물적분할의 부담이 너무 커졌다. LG화학은 분할을 앞두고 지분 70~80% 선을 지키겠다고 주주에게 약속했다. 

      시장에선 SK온 역시 직상장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지만 꺼낸 카드는 프리IPO였다. SK온은 현재 FI를 대상으로 투자유치를 준비 중이다. 거래 구조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분 10% 수준의 보통주 신주를 발행해 3조원을 확보할 것으로 전해진다. FI가 현재 SK온의 현시점 기업 가치를 30조원으로 평가해 준다면 SK이노베이션의 지분 희석도 10% 선에 그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아직 조건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신주 발행 형태로 프리 IPO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 SK이노베이션의 SK온 지배력 약화로 인한 주주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프리IPO에 대한 투자자 반응은 냉담하다. 계획이 보도된 지 하루 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장중 5% 하락한 2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SK온의 재무 사정이 LGES에 비해 넉넉하지 않다. 분할 당시 SK온에 배정된 현금은 약 2049억원. 여기에 분리막 계열사인 SK IET 주식 매각 자금과 배당금 총 2조3530억원 중 1조7000억원, 윤활기유 계열사 SK루브리컨츠 주식 매각 자금 일부가 SK온에 추가 배정됐다. 현재 시장에선 SK온이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이 약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 들어 수주잔고와 함께 치솟은 설비투자 계획으로 재무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5년 내 갖추어야 할 생산 능력이 올해에만 80GWh 이상 늘어난 터라 매년 1조원 가까운 투자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 이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흑자전환해 현금흐름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LGES에 2년간 지급할 소송 합의금 1조원을 고려하면 2023년까지 3조원가량이 부족한 셈이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더라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주주 반발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프리 IPO를 택한 SK온과 국내 직상장을 택한 LGES의 결말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SK그룹의 경우 LG그룹에 비해 다수 FI와 상시 거래를 이어가고 있고 기업 분할 경험이 많아 자본시장 활용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라며 "나쁘게 말하면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거지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SK온으로선 모회사 지배력 희소로 인한 여론 악화를 감내하는 대신 무리하게 IPO를 진행시킬 필요성은 줄었다는 평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최소한 2024년 이후 기업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때 IPO 검토에 나설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우선 프리IPO를 통해 숨을 고르고 LGES의 IPO 이후 시장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수주잔고와 설비투자 계획을 가파르게 늘려가고 있는 터라 위태롭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코스피를 택한 LGES와 달리 SK온이 나스닥과 같은 해외 시장 상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거론되는 SK온의 투자 유치 대상 역시 글로벌 기관들이다.

      LG화학 분사 발표 당시에도 나스닥 상장을 목표할 경우 배터리 자회사가 글로벌 자금의 친환경 투자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코스피를 택하며 해외 경쟁사에 비해 기업 가치나 공모 규모에서 손해를 보게 됐단 시각도 있다. SK온이 프리 IPO를 발판 삼아 시장 규모가 큰 해외 상장을 택하면 LGES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거나 모회사와 동일 시장에 중복 상장한다는 우려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SK온의 프리IPO 시점 기업 가치가 30조원에 못 미치거나 프리IPO 이후 단기간 내 상장에 나설 경우 여론이 한층 더 악화할 가능도 있다. 어디까지나 SK이노베이션과 SK온이 투자자 반발에 준하는 주주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초 상장한 SK IET의 경우 지난해 9월 프리미어슈페리어 유한회사에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프리IPO를 한지 1년도 안돼 상장에 나섰다.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분리막 사업부를 분할 상장한 것인데, 수개월 자금 융통을 위해 모회사에 귀속될 수 있는 이익 일부가 FI에 이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 측이 수주잔고와 증설 계획을 꾸준히 발표하는 것을 두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 IPO에 나서려 준비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라며 "SK IET처럼 SK온도 프리IPO 직후 상장에 나설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수 있다. 프리IPO를 통해 저평가된 배터리 사업 가치를 부각시키지 못할 경우 오랜 기간 시장의 외면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