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전쟁'이 불지핀 K드라마 전성시대...'무조건 올인' 투자에 부작용 우려도
입력 2021.12.16 07:00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도 한국 상륙
    급성장한 韓미디어 시장…대규모 투자 대기
    "모두가 처음 겪는 시장, 부작용도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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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1년은 ‘K콘텐츠’의 한 해였다. 하반기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은 9월23일부터 11월7일까지 46일 연속 넷플릭스 전세계 시청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넷플릭스 역대 최장 1위 기록이다. 이어 지난달 공개된 ‘지옥’은 공개 후 하루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시청 1위를 달성하며 계속되는 K콘텐츠의 인기를 실감했다.

      ‘오징어게임 프리미엄’으로 한국 콘텐츠 시장을 향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들도 연이어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11월 초 애플TV플러스가 국내에 깜짝 출시됐고, 같은 달 디즈니플러스도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워너미디어 계열 HBO맥스는 내년 하반기 한국 상륙이 전망된다.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OTT에 한국은 중요한 '깐부(파트너)'가 됐다. 통상 글로벌 플랫폼들은 지속적인 구독자 증가를 위해서는 인구가 많은 아시아 지역 확장이 필수다. 한국은 높은 인터넷 보급률, 콘텐츠 제작 역량 등 아시아 시장 거점으로 제격이다. 최근 일본과 인도네시아 넷플릭스에서 상위 랭킹 10위 중 8~9개의 작품이 한국 드라마일 정도로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인기는 증명됐다. 

    • 국내 미디어 시장을 둘러싼 시장 참여자도 대폭 늘어났다. 대기업, 사모펀드(PEF), VC(벤처캐피탈) 등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이 잠재 FI(재무적 투자자), SI(전략적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CJ ENM·JTBC·네이버 연합의 티빙(TVING)은 3000억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진행중이다. 복수의 FI가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해외 SI 유치 가능성도 주목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이르면 내년 상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통 대기업도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신세계는 2020년 4월 콘텐츠 자회사인 ‘마인드마크’를 설립하고, 콘텐츠 제작사인 '실크우드'(32억원), '스튜디오329'(45억원)를 인수했다. 아마존이 아마존프라임으로, 쿠팡이 쿠팡플레이로 콘텐츠 사업에 진출했듯 신세계도 유통과 콘텐츠의 시너지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미디어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표 미디어 기업들은 제작역량 강화를 위해 제작사 인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고있다. CJ ENM은 올해 3분기에만 영화 제작사 ‘엠메이커스’와 ‘모호필름’, 애니메이션 제작사 ‘리언볼트’ 등을 인수했다. JTBC스튜디오는 올해 국내 제작사 4곳 추가 인수를 비롯해 지난 2년간 국내 제작사 12곳을 인수했다. 해외 유명 제작사 인수도 이어졌다. 5월 JTBC스튜디오는 미국 제작사인 '윕(Wiip)'을 1338억원에 인수했고, 11월 CJ ENM은 미국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를 약 1조원에 인수했다. 이달 9일 CJ ENM은 미국의 4대 종합 미디어기업 중 하나인 바이아컴CBS과 콘텐츠 투자 및 제작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K콘텐츠 붐’을 타고 글로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커진 국내 미디어 시장에 대규모 자금 유입이 기대된다. 글로벌 OTT들의 미국 등 현지 콘텐츠 제작비에 비하면 국내 제작비가 현저히 낮은 만큼, 향후 ‘고퀄리티’ 한국 콘텐츠를 위한 투자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디즈니플러스도 유명 웹툰 원작의 드라마 '무빙'에 총 5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하기로 했다.

      콘텐츠 업계에선 "우리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며 기대 반 우려 반을 내비친다. 투자가 늘어나고, 전체 파이가 늘어나는 건 긍정적이지만 갑자기 자금과 수요가 쏠리면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쏠림 현상’이 벌어지면서 ‘깜깜이 돈’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량과 형식 제한 없이 ‘우선 콘텐츠’를 보고 투자하는 글로벌 OTT의 사업 방식 때문에 영화보단 ‘드라마’ 수요가 늘어났다. 그런데 영화의 경우 투자기관 내 꼼꼼한 감사 등 오랜 시간 형성된 시스템으로 자금 흐름이 투명하고, 자본시장 내 투자와 배급에 익숙한 ‘선수’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제작 과정에서 비교적 돈의 흐름을 추적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국내 드라마 제작 업계의 행태가 미숙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름값이 중요한 업계다보니 스타PD 한명만 포함돼 있으면 ‘유명 제작사’ 타이틀이 붙는다. 대기업에 인수되는 제작사들도 보통 10명 이하의 소기업인 경우가 다수다. 최근엔 공중파 포함 여느 방송국을 막론하고 PD들이 모여 법인으로 독립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웹툰·웹소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독자적으로 IP(지식 재산권)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크지만, 히트작이 하나만 나와도 회사 매각 혹은 IPO까지 꿈꿀 수(?) 있을만큼 거품도 커지는 분위기다. 

      업태가 이렇다보니 미디어 시장은 '뒷말'이 많다. 최근에도 카카오엔터에 드라마 제작사를 200여억원에 넘겨 ‘잭팟’을 터뜨렸다고 알려진 한 스타PD 출신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사기죄로 피소를 당하기도 하고, 업계 유명 인사가 드라마 제작 투자를 위해 지인들과 펀드를 결성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글로벌 OTT의 한국 오리지널의 제작비 수익 배분도 작품마다, 제작사마다 달라 추측만 무성하다. 

      한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업계가 워낙 폐쇄적이다보니 계약부터 투자, 제작 추진까지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계약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작품당 제작비 규모가 커지고 있어 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의 질적 저하도 주의해야 한다. 좀비물 등 장르물이 글로벌 시장에 쉽게 통용되기 때문에 글로벌 OTT가 이런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기획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이은 ‘조폭물’의 히트로 2000년대 초 국내 영화판에 조폭 영화만 이어졌던 경험, 일본이 애니메이션 등 한정된 장르에 매몰되면서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과 'K드라마의 정체성' 사이에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평이다. 

      미디어 업계에 정통한 한 IB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OTT들은 돈은 준비됐는데 좋은 콘텐츠가 없고, 원작은 있는데 제작자가 없다고 말한다”며 “제작사들은 콘텐츠들을 어디에 공급할지, 플랫폼들은 어떤 제작사랑 일해야 하는지 서로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열린 제42회 청룡영화상에서 배우 윤여정은 "우리는 언제나 늘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있었고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릴 주목할 뿐이다. 이 말에 책임을 지게 해줘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오징어게임 이후, '반짝'이 아닌 한국 콘텐츠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성숙한 시장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