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목소리 내는 전경련 필요성 주장
벤처 위한다지만…재벌 오너 지배력 강화 수단 사용 우려
-
2014년부터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차등의결권제 도입관련 국회 통과여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회 산자위 문턱을 통과하고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전경련을 중심으로 법 통과가 필요하단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벤처붐을 만든다면서 대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나서는 모양새가 이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 창업인의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대기업 오너의 지배력 강화에 나서기 위함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지난 2일 국회 산자위는 일정 요건을 갖춘 비상장 벤처기업에 10년까지 유효한 1주당 10 의결권 이하의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법사위에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도입시 대주주의 지배력 집중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끝에 전체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되긴 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다.
총대를 메고 나서는 곳은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다.
전경련은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이 경영성과나 주주 이익 실현에서 모두 우수했다는 분석 자료를 내는 등 차등의결권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차기 정부에는 ‘모범회사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법에는 회사 필요에 따라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종류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전경련은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했고, 일본도 다양한 종류의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사위에서도 나왔듯이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많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인정은 시장의 한 측면만 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 입장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투자하는 벤처의 의결권이 10 분의 1 밖에 안된다면 그 주식의 투자가치는 그만큼 작은 것”이라며 “그런회사에 투자할 이유가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오랜기간 논쟁이 있었지만 차등의결권 필요성에 불을 지핀 ‘쿠팡 상장’에 대해서도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일부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쿠팡이 사례를 들며 기업 경영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견해도 많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선 차등의결권이 축소되는 방향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5년 100곳에서 2018년 69곳으로 감소했으며, 미국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 비중은 6.5%~7%까지 상승했지만, 2010년대 이후엔 빅테크들의 잇딴 상장에도 5.4%~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CFA협회에서도 반대하고 있으며, EU에서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국내 처럼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만을 가지고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오너의 전횡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릴 정도로 주주보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에선 차등의결권제도가 부의 편취 및 봉건적 기업거버넌스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전경련이 적극적으로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전경련은 재벌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차등의결권제도 논의의 다시금 불을 붙인게 벤처 경영인의 경영권을 보장하자는 것인데, 오히려 재벌기업들이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적극 나서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한 기관투자자는 “차등의결권이 당초 취지와 달리 재벌 오너의 기업 지배력 강화 수준으로 쓰일 수 있다”라며 “국회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