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 뻔히 보이는 현대차의 '미래차' 구조조정…책임은 누구에게
입력 2021.12.24 07:00
    취재노트
    현대차, '시대전환' 임원 인사 vs 노조 '강성 회귀'
    노사관계 악화 우려…"미루다 일 꼬였다" 우려도
    정부도 사실상 손 놓은 문제…책임소재도 모호
    車 산업 생태계 전체로 보면 경착륙 불가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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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얼마 전 현대자동차의 노동조합 지도부 선거와 연말 임원 인사가 열흘 간격으로 마무리됐다. 임원 인사가 '시대 전환'이라면 새 노조는 '강성 회귀'쯤으로 요약된다. 조합원 상당수는 여전히 '글로벌 5위 전기차 기업' 타이틀이 달갑지 않다는 얘기로 들린다. 차 산업의 미래를 두고 회사와 노조가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 9대 지부장으로 선출된 안현호 후보는 2만2101표(득표율 53.33%)를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조합원 투표 참여율은 85.02%였다. 안 후보는 ▲국민연금과 연계해 정년을 연장하고 ▲신기술 도입 및 공장 이전, 기업 양수도, 차종 투입, 전환배치 등 사안을 노사가 공동 논의하자는 공약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대차 입장에선 모래주머니 차고 경쟁하란 말과 같다. 그런데 동의하는 조합원이 과반이다. 

      시장 허들은 수개월 단위로 높아지고 경쟁사 주가는 날아가듯 하는데 정상적인 노사 관계로 보기 어렵다. 지난 3년간 노사관계에 불었던 훈풍이 무색하다. 관계 악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실제로 시대착오적인 노조만 문제 삼기엔 현대차의 대응에도 아쉬운 지점이 적지 않다. 

      폭스바겐과 GM 등 현대차와 함께 전기차 대응에서 선두그룹에 속한 기업은 지난 수년간 구조조정을 병행해왔다. 기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전기차 전용 생산 라인에 각각 수조원을 투입했다. 직원들에게 내연기관이 좌초자산임을 공인하고 매를 미리 맞은 것이다. 당시 현대차는 '자연 감소'를 택했다. 매년 약 2000명씩 5년 동안 1만명 이상이 차례로 은퇴 시점에 들어간다는 계산이었다. 

      당시 '연착륙'을 기대했던 현대차 셈법은 강성 노조 출범과 함께 꼬였다. 현대차그룹의 정년은 60세. 은퇴 임박한 직원이 불어날수록 연금 수령 시기인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요구도 거세진다. 여기에 지난 2년간의 임금 정체도 조합원 전반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노무 관계를 총괄하던 윤여철 전 부회장은 "일자리를 지키자고 전기차로 가지 않는다면 회사가 망해서 일자리 전체가 사라진다"라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새 노무라인은 윤 전 부회장을 대신해 '해외 투자를 늘리고 국내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설득시켜야 한다. 관련 업계에선 노사관계 재정비 기대감보다 미루고 미루다가 구조조정이 더 어려워졌다는 낭패감을 비치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차그룹의 안일한 대처를 이제 와서 문제 삼자니 이도 마땅치 않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자 치적인 마당에 인위적 구조조정에 나설 기업인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는 대통령이 전 대주주를 만나 "복직 문제 관심 가져달라"라고 말한 지 1년 만에 전원 복직했다. 대통령과 만났던 대주주는 지난해 적자투성이인 쌍용차에서 손을 뗐다. 그는 "현대차 노조 전투력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불가능한 선택지"라고 덧붙였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개인의 산업 이해도가 낮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장기적인 구조조정 청사진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 전환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연착륙을 대비하자면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업계 각지에서 이 같은 우려를 표해왔다. 한국에선 '미래차 전환 가속화' 대책만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21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17차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를 열고 내년에 전기차와 수소차 50만대 보급을 위해 2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1월까지 무공해차량 보급 실적이 25만대를 넘겼다는 상찬도 함께였다. 무공해차량이라고 하지만 실은 내연기관이 아닌 차, 또는 미래차와 같은 말이다. 

      정부 부처 위원회 소속 한 인사는 "국가 주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하지만 또 누가 총대를 메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라며 "결국 거기까지 가면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힘들다 보니 불편한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차 산업 생태계 전체로 시야를 넓혀보면 정부가 나서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호해 보인다. 

      자동차산업협회가 올해 완성차 및 부품업체 300곳 및 종사자를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래차 사업 미진출 기업이 전체의 56.3%에 달한다. 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종사자는 전체의 73.1%로 과반을 훌쩍 넘겼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생태계 절반 이상이 사업 전환을 못했는데,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인력을 재교육하기 위해선 ▲공공부문 도움은 실효성이 없고 ▲주요 납품처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주요 납품처는 결국 현대차그룹일 공산이 크다. 

      정부가 혁신을 지원할수록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게 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정부에서도 부품 업체 사업재편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은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현대차그룹도 미래차 대응을 위해선 종전의 협력 생태계와 작별이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지만 구조조정 경착륙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