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 대비에 IR로는 부족…해외 자문사까지 찾는 대기업들
입력 2022.01.25 07:00
    과거 '합법'여부만 따졌으나 '리스크 관리'차원서 대응
    '그룹 오너'에 초점 맞췄으나 향후 '주주 설득'이 관건
    SKT 등 해외 자문사 고용하기도…ESG 관심도가 큰 영향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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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쪼개기 상장’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진 대기업들이 법·회계 이슈뿐 아니라 '주주관리'까지 외부 자문을 구하고 있다. 분할 과정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여기서 불거지는 주주ㆍ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예전처럼 자체 IR(Investor Relations)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지난 수년간 기업의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에서 ‘주주가치’가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해외 투자들에게 해당기업의 'G(거버넌스)' 이슈를 설명해야 하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분할은 단순 이슈…초점은 '그룹 오너'

      대기업들의 지주사 혹은 관계사 분할 과정은 과거에도 빈번히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의 반발은 드물지 않은 사례였다. 동아제약의 ‘박카스’ 분할, 쿠쿠의 ‘밥솥’ 분할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다만 ‘법적으로 위반되지 않는지’ 수준의 검토만 하면 분할은 무리없이 진행됐다. 업무를 맡은 법무법인들에게도 물적분할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보수도 높지 않아 비교적 ‘단순 업무’에 속했다. 분할 후 잔존하는 회사가 ‘깡통회사(사업성이 없는 회사)’가 되어 상장폐지 되거나, 분할과 동시에 M&A(인수합병)을 추진하는 등의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난이도 있는 업무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로펌에서 기업분할은 업무 자체보다는 ‘어느 기업’을 맡느냐의 문제였고, 주주들이 어떻게 문제 삼을지에 대한 검토도 있지만 지금처럼 핵심 사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큰 사업이 2003년 LG그룹이 대기업으로는 처음 통합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한 경우다. 당시 로펌ㆍ회계펌ㆍ컨설팅펌 등 자문사들은 전담 조직에서 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다른 대기업들의 지주회사체제 도입이 이어졌고 보수도 ‘쏠쏠한’ 업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트렌드가 바뀌고 접근방식도 달라졌다. 대기업들이 과거에 비해 이미 대부분 큰 지배구조 틀을 정비했기 때문에 LG지주사 체제 전환 같은 일이 줄었다. 

      대신 과거에는 분할 자체가 비주류 사업 매각을 위한 분할이 많았다면, 최근엔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성격이 많아졌다. 아울러 떼어내는 사업들이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 이커머스, 핀테크처럼 신사업이 대다수여서 회사법, 노동법, 지적재산권(IP)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투입되는 복잡한 업무가 됐다.

    • 관건은 '주주설득''…IR로는 부족해 해외 자문사 쓰기도

      가장 큰 변화는 분할과정에서 '누구를 대변하느냐'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그룹 지배구조의 안정화 및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면, 최근에는 이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발이 없는지가 더 부각됐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예전 지배구조 컨설팅이 기업 혹은 그룹의 오너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투자자를 위한' 컨설팅이 됐다"며 “최근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하는 부문이 신사업이 많다보니 자문사에서도 다양한 전문가가 투입되어 구조를 짜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외부 도움을 찾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업이 의사결정에서 주주 이익을 중심에 두지 않았고, 투자자 대응을 자체적인 ‘IR(Investor Relations)’로 해결하면서 외부 자문 수요가 없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포함한 ‘큰 손’ 기관들의 주주관여 활동이 증가하면서 주주관리의 난이도가 높아져 전문 서비스를 찾는 발길이 늘어났다. 

      한 의결권 자문업계 관계자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국내에서 기업도, 시장도 기업 분할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법적으로 이슈가 되는지 외에도 주주가치도 고려해야하니 주주총회가 다가오면 자문을 받는 투자자들뿐 아니라 기업들도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높은 기업들은 해외 반응에도 면밀히 신경쓰게 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물적분할 자체를 주주가치 훼손으로 보고 반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분할을 진행할 때는 ‘거버넌스'의 정당성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SKT는 인적분할 및 중간지주사 전환 안건이 상정된 주주총회에 앞서 의결권 분쟁 대응 자문사 '머로우 소달리'를 이용했다. 이전에도 기업분할을 이어오던 SK그룹이지만 ‘해외 투자자 대상’ 의결권 대응 서비스를 이용한 것은 처음이다. SKT의 중간지주 전환 이슈는 그룹의 ‘숙원’이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ESG책임투자 시작한 기관 입김 커져…달라진 'G'의 위상

      이런 배경 가운데는 주주가치를 고려하는 ESG 경영과 투자가 확대된 움직임도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국내에서 ESG를 고려할 때 ‘G’는 대부분 오너중심 재벌체제의 낙후된 기업지배구조가 가장 큰 문제로 꼽혔지만 이제는 경영활동에서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G’의 핵심이 됐다. 아울러 기관투자가들도 'ESG 책임투자'를 표방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주주가치 보호 추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이로 인해 자문사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물적분할 관리가 아닌, 전반적인 ‘ESG 컨설팅’이 자문업계의 새 먹거리로 떠올랐다. 각 그룹의 현재 상태 진단부터 경영체계 수립, 공시, 개선과제 도출, 적정 프로젝트 찾기, 비전 만들기 등 총체적인 ESG 전략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인데, 사업부문 분할 및 매각도 전략으로 포함될 수 있다. 

      사실 ESG 관점에서 볼 때, 물적분할이 ‘신사업’으로 거듭나는 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부정적인 이벤트로 볼 수는 없다. 

      한화가 방산부문 분산탄 사업을 떼어내고, SK그룹이 SK건설을 SK에코플랜트로 바꾸고 플랜트 사업을 분할매각해 ‘친환경’ 변신을 꾀하는 것도 ESG 대응 측면이다. 소위 ‘나쁜사업’을 포함하고 있으면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가 배제될 수 있다.LG화학의 경우 자금 조달과 신사업 강화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동시에 핵심인 배터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중복상장’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산 점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많은’ 이슈라는 점에서 ESG 평가 시 ‘G’ 부문 감점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ESG평가 업계 관계자는 “ESG경영 강화를 위해 사업부를 떼어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물적분할 자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라며 “다만 떼어내는 부문이 해당 사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때는 주주가치 상충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시장의 민감도가 높아진 만큼 앞으로 기업들도 의사결정에서 주주 등 이해관계자를 더욱 예민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