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왜 '위험 경고'하는 투자 구루(guru) 없나
입력 2022.01.27 07:00
    Invest Column
    美 증시 급락, '빅샷'들은 일찌감치 경고
    국내선 '코스피 3400' 장밋빛 전망만...충격 더 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예측 못한 이슈도 있었지만
    상황 바뀌어도 먼저 나서 '뷰' 고치는 곳도 없어
    • "미국 증시가 연말까지 현재의 (급락한) 수준을 유지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현지시각 지난 25일,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

      "2년간 지속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지 않으며 성장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코로나에서 빠져나오며 통화정책은 전환될 것이다. 사람들은 낮은 금리와 공짜 돈이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잊고 있다." (지난 19일,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회장)

      "시장에 거친 물결이 몰아칠 것이다. 코로나 기간에 부채가 급증했는데, (금리 상승으로)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달러 강세는 일시적이다. 신흥시장이나 단기채권 상품을 추천한다. (지난해 12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탈 CEO)

      국내 증시 투자자에겐 청천벽력같은 한 달이었다. 연초 이후 코스피 하락율은 9%로 미국 S&P500 지수 하락률과 비슷했다. 13% 하락한 나스닥보다는 상황이 나았다지만, 그 전 1년간 나스닥 지수 상승률은 21%, 코스피는 고작 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로가 되지 않는 수치다.

      국내 투자자들은 마음의 준비도 덜 됐다. 미국은 지난해 4분기부터 이른바 '빅샷'으로 불리는 투자업계의 거물들이 지속적으로 하락에 대한 준비를 하라며 경고음을 보냈다. 지난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며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때에도, 이들은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이라며 반대의 의사 표시를 해왔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꾸준히 시장의 리스크에 대해 지적해온 제프리 건들락 CEO는 지난해 12월초 미국의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수개월간 7%를 상회할 것이며, 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1%를 돌파하면 위기가 시작될 거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미국 CPI는 7%로 40년래 최고치였으며, 미국 국채 2년물 금리가 이달 중순 1%를 돌파하며 증시도 급락했다. 그가 운용하는 더블라인 토털리턴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마이너스(-)1.06%로, 주요 지수 하락률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국내 증시엔 이런 구조적인 변화를 분석하고 투자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배치)을 권유하는 '구루'(권위있는 지도자)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주요 대형증권사는 물론,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의 CEO들은 투자의 대가라기보단 일반적인 경영자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이들이 심도있는 분석이나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전하지도 않는다.

      한 증권가 임원급 관계자는 "지난 1년간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업계 CEO가 시장 전망과 관련해 메시지를 던진 건 지난해 1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정도가 아니었나"라며 "당시 유튜브에서 던진 메시지도 '좋은 트렌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 '자산배분을 위해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라' 정도의 일반론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그나마 권위있는 시장 전망은 거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의 입에서 나온다. 다만 이들의 전망 역시 매크로 흐름을 짚고 이에 따른 전체적인 자산 배분에 대한 전략적인 관점이라기보단, 살 만한 종목이나 주목할 업종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주요 증권사가 발행한 올해 코스피 전망을 종합해보면, 메시지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주를 사라', '2021년만큼 급등하긴 어렵지만 기회가 있고 코스피가 3300~3400선까진 갈 수 있다', '바닥은 2800정도로 예상되며 하락하면 장기 투자를 위한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만약 연초 이후 하락장세에서 이 조언을 따랐다면, 현 시점에서 손실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연초 이후 삼성전자는 6%, SK하이닉스는 11% 떨어졌다. 이들이 바닥이라고 제시한 코스피 2800선은 새해들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무너졌다.

      코스피 2800은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10배이자,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의 기준선이다. 최근 5년간 코스피 지수 평균 밸류에이션이기도 하다. 평균선을 하방 지지선이라고 제시한 셈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돌발 이벤트가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감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난 심화가 문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올해 말 배럴당 90달러 안팎으로 예측했던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120달러로 크게 올렸다. 아시아로 향하던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수 척이 가격이 폭등한 유럽으로 기수를 돌렸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결국 인상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초 채권시장은 2023년 12월 15bp(0.01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올해 12월 25bp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파생결합펀드' 사태로 국내 금융시장에 큰 상흔을 남겼던 독일 국채 금리 역시 3년만에 플러스(+)로 전환되기도 했다.  

      상황이 바뀌면 뷰(view;시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지난해 하반기 제시한 2022년 코스피 전망치를 수정한 리서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략ㆍ시황 담당 연구원들이 실시간으로 하락의 배경을 설명하며 보수적 대응을 권고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주식 외 다른 투자자산에 대한 투자 권고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오히려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까지도 '서학개미' 열풍을 틈타 국내보다 수수료가 비싼 해외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 판매에 열을 올렸던 게 사실이다.

      브로커리지 수익이 최대 50%에 달하는 국내 증시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평도 있다. 어떻게든 돈을 증시에 머물게 만들어야 수익이 나는만큼, 상황이 좋지 않아도 '팔고 떠나라'보다는 '다른 주식을 사라'라고 권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 특성상 대외변수에 취약하고, 개인 투자자의 투기적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점 역시 예측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능력있는 리서치도 많고 실제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이미 국내 대부분의 리서치는 표면적인 의견 그 자체보다는 맥락이나 뉘앙스를 따져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독해를 해야하는 지경에 이른 것 역시 사실"이라며 "중요한 고비 때마다 맥을 짚어주는 '구루'가 없는 자리에 불법 리딩방이 들어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