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분할 상장 '일시 멈춤'…지주 청사진ㆍ주주 이익공유 이슈 수면 위로
입력 2022.01.28 07:00
    SK·현대重·카카오…자회사 상장 시기 부담
    기업 거버넌스 관리 향한 주주들 비판 눈초리
    주주가치 보호하는 지주사 옥석 가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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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모자회사 동시상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자회사 상장으로 기업가치 확대를 노리는 대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의 거버넌스 관리를 향한 주주들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자회사 상장이 주가에 영향을 덜 미치는 지주사를 향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모회사 주주들의 반발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주가 부양책'으로 향하고 있다. 지주사의 명백한 성장 청사진은 물론, 이익을 주주들과 어떻게 배분할 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이어 자회사를 상장시킨 SK그룹은 올해 상장 적기 타이밍을 찾기가 관건이다. SK스퀘어의 자회사인 원스토어와 SK쉴더스는 각각 지난해 11월 26일, 올해 1월 5일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청구서를 접수했다. 특별한 이슈 없이 심사를 통과하면 두 회사 모두 상반기 안에 상장이 가능한 일정이지만, 시기 확정은 지켜봐야 한다.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한 SK온은 빠르면 올해 IPO(기업 공개) 절차 돌입이 예상됐으나 현재로서는 천천히 진행 될 것이란 분위기다.

      현대중공업그룹도 논란을 피해가긴 어렵다. 19일 한국조선해양 부회장은 현대삼호중공업의 연내 IPO 추진 계획을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모회사(현대중공업지주)부터 중간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에 이어 3개 손자회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까지 모두 동일 시장에 상장하는 셈이라 현재 현재 분위기로는 시기적인 부담이 있다. 

      카카오그룹의 지주사 격인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의 주주들이 자회사 분할 상장이 카카오의 기존 주주가치를 희석한다고 지적하고 있어 남은 자회사 상장을 빠르게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카카오의 주가는 연일 하향세를 그리며 25일 기준 9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종가 기준으로 작년 3월 9일(8만8509원) 이후 처음이다.

      현재의 모자회사 동시상장 논란 극복에는 국내 기업의 고질적인 기업지배구조에 기반한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 문제 해결이 핵심이란 분석이다. 

      기업 분할은 기업 입장에서는 IPO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성장부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창구다. 다만 핵심 사업 분할 후 IPO시 외부 주주가 유입되면서 성과가 나눠지거나, 상장 후 경영권 프리미엄이 대주주에게만 부여되면서 모회사 주주가치가 희석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도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원칙적으로는 허용하고 있다. 다만 해외의 모자회사 동시상장 비율은 영국은 0%, 미국은 0.5%, 일본 6%로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상충과 소송에 대한 우려로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를 동시에 상장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모자회사 동시상장이 원칙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은 낮지만 주주 보호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에 대한 당국과 시장의 감시의 눈초리는 점점 강화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대주주가 ‘기업가치를 올리는’ 주주와의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지 않으면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 이러한 기조가 지주사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대기업들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대부분 대주주가 지주회사 지분을 크게 확보하며 지배력을 높였다. 

      때문에 지주사의 역할이 상속과 승계 등 ‘대주주 이익 증대’에 집중된 경우가 다수다. 이렇다보니 시장 관계자들은 으레 “국내 지주사 주가는 볼 것이 없다”고 평했다. 

      단순 관리형 지주회사에 대한 시장의 투심은 바닥 수준이다. 2021년 지주회사의 평균 주가 수익률은 8%를 기록했다. 기존 지주-분할 상장 구조가 도마 위에 오른 이상 주주이익을 고려한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는 곳과 아닌 곳으로 옥석 가리기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지주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2022년은 지주업종 종목간 차별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재평가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업의 공통점은 뛰어난 경영진을 보유하고 있고, 최대주주와 소액주주간 이해관계가 일치되며, 포트폴리오를 적극 관리하는 기업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지주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이 지주회사 밸류에이션의 리레이팅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지주사 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그룹은 SK 정도다. ‘투자전문회사’로 변모한 SK㈜는 공격적인 성장산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 인사와 조직개편도 ‘투자 전문성 제고’에 방점을 뒀다.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 E&S, SK에코플랜트, SK팜테코 등 핵심 비상장사 계열사의 경영진들은 이미 지금부터 ‘주가 부양’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경영진의 성과평가지표(KPI)에 주가가 주요 항목이다보니 ‘상장시 어떻게 멀티플(기업가치 산정 배수)을 높일까’가 최고 관심사라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주사가 됐건, 만년 저평가됐던 회사가 됐건 ‘무엇으로 가치를 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주주들에게 IPO나 M&A(인수합병) 등 가치 확대 계획은 물론이고 어떻게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줄 지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기업만이 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시장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