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펀드 운명' 못 벗어난 코스닥벤처펀드...공모주·메자닌 환경도 악화
입력 2022.02.10 07:00
    활성화 정책에도 코스닥 부진한 모습 이어져
    공모주 열기 줄어들고, 메자닌 리픽싱 新규제
    핵심 수익 구조 무너지니 코벤펀드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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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문재인 정권 들어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스닥벤처펀드(코벤펀드)가 결국엔 다른 정권의 관제펀드와 같은 말로(末路)를 걷고 있다. 공모주와 메자닌이 코벤펀드 수익 구조의 핵심이었는데, 최근 공모주 시장은 열기가 줄어들고 있으며 메자닌은 리픽싱 규제 신규 도입으로 CB 발행이 뚝 끊겼다.

      코스닥을 부양하겠다는 당초 목적도 달성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코스닥은 펀드의 존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매크로 환경에 따라 등락을 오갔다. 코스닥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던 목적도 마찬가지다. 수 없이 쏟아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에 코스닥벤처펀드가 '물주'로 참여한 점을 제외하면,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코벤펀드는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으로 조성됐다. 중소·중견기업에 자본을 원활하게 공급해 육성하기 위해서다. 펀드 자산의 50% 이상을 코스닥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소득공제와 IPO 물량 우선 배정 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IPO를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공모주의 경우 코벤펀드는 물량의 30%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다. 출시 3달 만에 7820억원의 자금이 모였는데, 대부분은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노린 자금이었다. 정부부터가 '최근 공모주 평균 수익률 51%'를 코스닥벤처펀드의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삼을 정도였다.  

      문제는 최근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가 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공모주의 공모가 대비 상장일 종가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60%대에서 지난해 하반기 40%대로 낮아졌다.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론 '공모주 시장도 끝물'이라는 평가가 짙어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공모를 철회했고, 최근 수요예측을 진행한 코스닥 신규 상장 예정 기업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두 자릿 수에 그쳤다.

      코스닥 시장은 작년과 재작년 다수의 IPO로 유동성을 많이 끌어모아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대출 제한 등의 이슈로 유동성을 공급받기 힘들어 당분간 성장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기술특례 상장제도 역시 금리인상기-하락장에선 코스닥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기업은 31곳으로 전체 115곳 중 27%를 차지한다. 재무현황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기술성과 성장성을 평가해 상장하다 보니 최근 성장주가 하락하는 장에서 코스닥이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초기 펀드 구조의 설계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전체 코벤펀드의 절반 이상이 사모형으로 이뤄졌는데, 사모펀드는 코스닥 상장 기업 투자에 따른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메자닌 투자에 집중했다. 이에 코스닥벤처 기업에 자금이 흘러갔지만, 코스닥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1일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환사채 리픽싱 관련 규제가 바뀐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공모주에 이어 코스닥벤처펀드의 핵심 투자 수단이었던 메자닌, 특히 CB 발행 수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리픽싱 조건이 바뀌며 CB 발행의 이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CB 발행 시에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액을 하향 조정해주는 조건만 있었다. CB가 최대주주의 지분 확대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일부 작전 세력이 이를 악용해 차익 실현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작년 12월부터 주가가 다시 상승하면 전환가액도 오르는 '상향 리픽싱' 조건이 추가됐다.

    • 코스닥 시장 부양이라는 정책적 목적도 달성 여부에 물음표가 찍힌다. 코스닥 지수는 정책 여부와 무관하게 국내외 시장환경에 따라 등락을 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출시 직후 정책 수혜 기대감에 코스닥 지수는 900까지 올랐지만, 미·중 무역전쟁 등 경제환경이 악화되자 2019년 8월엔 코스닥 지수가 590까지 떨어졌다.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 여파로 1996년 개장 이래 역대 최고치인 11.71%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428.35로 마감했다. 이에 코벤펀드는 대부분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코스닥 급락 여파로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한 탓에 '실패한 관제 펀드'라는 오명이 붙었다. 당시 운용업계에서는 일자리 창출 같은 사회·경제적 이슈를 금융상품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안이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나 박근혜 정부의 청년희망펀드 등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등장에서 코스닥 상승세가 두드러지며 코벤펀드는 2년 반 만에 본전을 찾았다. 다만, 코스피 지수를 포함해 대부분의 글로벌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에 코벤펀드가 주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최근엔 미국 증시 인상 이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등 여러 글로벌 악재로 부진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월 25일 900선이 무너진 이후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꾸준히 빠져 4일 평균 마이너스(-)8.02%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코스닥 활성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코벤펀드로 몰린 자금이 코스닥 지수를 밀어 올릴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코스닥 시장을 움직인 건 외부 환경이었다. 대선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더이상 극적인 움직임이 있기 힘들 거란 분석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코벤펀드의 핵심은 공모주 우선배정이었으나, 최근 공모주 시장이 점차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코벤펀드도 힘을 못 쓰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반짝 흥행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관제 펀드’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