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책 뜨거운 감자된 '코인'…선심성 정책에 "먹튀 가능성" 우려도
입력 2022.02.15 07:00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 'ICO 허용 검토' 한 목소리
    VC·IPO보다 저렴하게 자금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
    '사업 실체 구체화 전 선판매 방식' 위험성 내포
    선심성 정책에 금융사기 우려…규제 강화해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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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암호화폐공개(ICO)가 대선판의 뜨거운 화두다. 여야 대선후보가 ICO 공약을 들고 나오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렸는데, 문제는 소위 '먹튀' 사례가 발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현재 ICO 관련 유사수신 행위는 급증했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미비하다. 표심을 좇은 선심성 정책에 각종 금융사기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공복리' 증진에 초점을 맞춰 가상자산 시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록체인에 기반해 부동산 개발이익을 국민과 공유하겠다는 구상이다. 법적 근거에 기반한 △가상자산 법제화 △증권형 가상자산 발행과 공개(STO) 검토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가상자산이 국민 자산형성의 중요 포트폴리오로 자리매김했다"라며 투자자보호에 기반한 산업 활성화를 약속했다. 불공정거래 수익환수, 해킹 및 시스템 오류에 대비한 보험 확대 등 계획을 밝혀 이재명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개인투자자 '보호'에 좀더 신경쓴 모습이다.

      두 후보는 '가상자산 법제화' 차원에서 ICO 허용에 공통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가상자산거래소 현장 간담회에서 "외국에서 상장된 코인을 거래하니 일종의 국부유출"이라며 업권법 제정 없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윤 후보는 같은 날 여의도 당사에서 "투자자 피해 방지를 위해 IEO(거래소 발행)부터 도입해야 한다"며 단계적으로 ICO를 허용할 의사를 내비쳤다.

      ICO는 사업자가 암호화폐 발행을 위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집하고 그 대가로 코인 등을 배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기업 입장에선 벤처캐피탈(VC) 등 외부 투자유치, 기업공개(IPO) 방식보다 자금 조달 방식이 간단하고 비용 부담도 낮다는 점에서 선호할 만하다. 특히 VC 투자의 경우 사업성 증명을 수반해야 하지만, ICO는 개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만큼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고 투자유치 기회가 더 많다는 이점이 거론된다. 투자사의 경영 간섭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특성에 개인 투자자가 직접 옥석을 가리긴 쉽지 않고 이를 악용한 금융사기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ICO를 빌미로 자금을 모은 뒤 사업자가 자취를 감추는 소위 '먹튀' 사례도 성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가상화폐 시장이 성장하던 초기부터 제기됐던 문제기도 하다.

      ICO는 대개 사업초기 단계에 일종의 사업 계획서인 백서를 기반으로 투자금을 모집한다. 자금이 필요한 블록체인 기반 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가상통화를 받아 향후 토큰 배분을 약속하고, 투자자는 발행 토큰이 거래소에 상장할 때 매각 차익을 노린다. 통상적인 실적·자금흐름·기업가치 등이 아닌 사업 아이디어만으로 투자여부를 판단해 리스크가 크다.

      내실있는 검증이 이뤄지긴 어렵다 보니 정보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일반 개인의 입장에서 백서만으론 블록체인 기술의 사업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은데다 이마저도 스캠(Scam), 즉 사기를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결국 사업자와 비교해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는 거래에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ICO를 빙자한 불법적 가상화폐 대행 서비스가 활개치는 상황이다. 정부가 2017년 강제력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ICO를 금지한 이후 가상화폐 투자금 모집을 막을 법적인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이를 이용해 국내에서 가상화폐 발행을 대행해주겠다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코인은 대개 작전세력에 의해 '사기'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수사 의뢰한 유사수신 혐의 61건 중 가상자산관련 건수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증가하며 절반(31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가짜 ICO에서 비롯된 피해를 구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조언한다. 문제가 터지면 사후적으로 형법상 사기죄 등을 적용할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대량 거래를 피해사례마다 입증해야 해서 정형화하기는 까다롭다는 분석이다. 법적 구제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으로 파악된다. 

      대형 법무법인 가상자산 전문가는 "ICO에 한번 실패하면 형사고소 등 법적책임까지 지게 될 수 있다. 한번의 실패가 전과처럼 따라다닐 수 있다는 얘기"라며 "ICO가 문제가 되는 건 사업 실체가 만들어지기 전에 선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효용성을 믿고 구매하라는 식이기 때문에 사기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ICO 허용에 앞서 코인 및 토큰의 법적 정의에 대한 논의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가상통화를 금전이나 증권 등으로 규정하지 않을 경우 ICO를 통해 가상통화를 모집하는 행위에 대해서 특정해 규율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법에선 가상통화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증권성 인정 여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관련 상위·하위법령 제정 논의가 가능하다.

      애초 표를 염두에 둔 선심성 공약이다 보니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두 대선후보들의 가상자산 공약은 2030 젊은 코인러의 표심을 끌어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상자산은 취업난과 정체된 임금, 부동산 가격 급증 문제에 직면한 청년세대의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기존 정부의 규제일변도에서 한걸음 물러섰지만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다고 해도 문제다. 규제가 많을수록 웹 3.0'(탈 중앙화'와 '개인의 콘텐츠 소유'가 주요 특징으로 하는 차세대 인터넷) 정신을 기반으로 한 코인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규제가 심화될수록 탈중앙화 시스템에서 비롯된 개방성은 훼손된다. 규제 위주의 접근으로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갈라파고스화' 될 수 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컨설팅사 관계자는 "코인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장치를 강화하면 한국 코인 시장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 정부가 벤처시장을 키운다고 지원했지만 사고가 많고 극히 일부만 이득을 봤다는 전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