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으로 간 최태원 회장…전문경영인 체제선 ‘AI컴퍼니’ 무리 판단?
입력 2022.03.02 07:00|수정 2022.03.03 11:04
    취재노트
    최태원 회장 SKT 회장 겸임…"AI컴퍼니 혁신 미룰 수 없다"
    SKT, 수년간 신사업 강조했지만…증시 평가는 결국 '통신업'
    박정호 부회장, SK스퀘어 이끌며 AI 혁신 챙기기 어려워져
    AI 조직 아폴로 정체에 결단…대형 M&A 등 기대감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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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텔레콤 회장직을 겸직하며 AI(인공지능) 사업과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는 데 힘을 보탠다. SK텔레콤은 계열사 가운데서도 가장 혁신이 뒤처진 곳으로 꼽히는데 매년 강조했던 신사업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기존 경영진에만 맡겨서는 변화할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오너가 직접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1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의 무보수 미등기 회장직을 겸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SK텔레콤 회장을 맡기로 하며 “글로벌 AI 컴퍼니로의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도전을 위한 기회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시각을 달리하면 지금까지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월급쟁이 경영진'과 ‘이사회 중심 경영’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SK텔레콤의 수뇌부는 최태원 회장, 박정호 부회장, 유영상 대표 사장 체제로 꾸려지게 됐다. 박정호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최측근으로 SK C&C 사장, SK㈜ 사장을 거쳐 2017년부터 SK텔레콤을 이끌고 있다.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최태원 회장의 뜻을 SK텔레콤에서 가장 잘 실현할 인사로 꼽혔는데 아주 두드러진 성과는 없었다.

      박정호 부회장이 SK텔레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시선은 계속 있었다. 특히 '통신업’ 자체에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고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다른 사업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SK텔레콤은 작년 인적분할 당시 ‘AI∙Digital Infra 컴퍼니’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AI 기술로 구독(Subscription), 메타버스 등 신규 서비스도 강화하기로 했다. AI 기업으로 거듭나 통신사 이상의 기업가치를 주식 시장에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와 맞닿아 있다.

      청사진은 잘 그렸지만 SK텔레콤은 ‘통신사’ 평가를 벗기 쉽지 않았다. 구독 서비스 등 실현된 계획도 있지만 다른 사업들이 아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달 초 분할 후 첫 실적발표에서 유무선 통신·미디어·Enterprise·AIVERSE·Connected intelligence 등 5대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겠다 밝혔는데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좋은 테마들이 나열됐지만 실제 돈을 벌고, 평가를 받고, 주가에 반영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SK텔레콤 주가가 KT나 LG유플러스 등과도 크게 차별화되지 않으니 그룹에선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회사 내부에선 부담이 컸다. 한참 주가가 빠졌을 때는 국내 투자 IR(기업설명) 담당자와 해외 담당자가 경영 회의에서 누구 책임이냐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부회장은 작년 그룹의 숙원이던 SK텔레콤 분할 작업을 마무리하고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를 이끌게 됐다. SK텔레콤에 더 신경을 쓰기 어려워진 셈이다. SK텔레콤의 알짜 자회사들을 모두 SK스퀘어로 끌어가며 ‘투자’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평가다. 

      박정호 부회장이 SK텔레콤에서 가장 중요한 AI 혁신 역시 챙기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그룹 계열사들은 그룹 차원의 큰 전략은 따라가지만 그 실행에서는 각자도생하고 있다. 그룹 수뇌부에서 장기 방향을 제시해도 각 회사 경영진은 당장 성과가 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박 부회장이 매년 SK텔레콤 신년사에서 빼놓지 않고 AI를 언급해도 그 무게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의 SK텔레콤 겸직은 회사의 AI 전략 태스크포스 ‘아폴로’의 정체가 결정적이었다는 시선이 있다. 작년 5월 출범한 아폴로는 그룹 ICT 전략의 중추로, 향후 AI 총괄 자회사로 클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지금까진 드러내놓을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AI 영역은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으나 아직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크다. 유명한 인재를 몇몇 영입하는 것보다 유력 기업을 사들이는 편이 시장 확대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은 자회사가 줄줄이 상장을 대기하는 SK스퀘어와 달리 성장 자금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통신업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내고 있지만 대형 AI 기업 M&A에 나서기 위해선 그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총수가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 만큼 SK텔레콤이 AI 사업에서 대형 성과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최태원 회장은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에서도 미등기 회장을 맡고 있는데 두 회사는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로 성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