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사라지고 'SW' 부상한 현대차 인베스터데이
입력 2022.03.07 07:00
    Weekly Invest
    현대차, 'CEO 데이'에서 수소·수소차 언급 無
    기업 가치엔 결국 수소차 아닌 '전기차 계획'
    SW 매출 30% 목표…전기차 밸류 핵심 요인
    '시총 100조' 외친 기아…여전히 소극적이란 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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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자동차의 '2022년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수소'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수소 솔루션 사업을 세 번째 사업 축으로 삼고 투자 계획을 대폭 늘렸었지만 올해 행사는 전동화 계획만 집중적으로 다뤘다. 시장에선 당장 현대차의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되는 건 수소 사업이 아니라 전기차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는 2019년 이후 3년 연속 전 세계 1위 수소차 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에도 현대차의 수소차 판매량은 도요타를 압도했다. 수소차를 비롯한 수소 관련 사업에서 현대차그룹이 선도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수소차 1위'에 고무되는 투자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사실상 현대차 넥쏘와 도요타 미라이 둘이서 벌이는 싸움인 데다, 전체 시장 규모도 연간 1만7000대 안팎에 불과하다. 수소 사업이 현대차의 기업 가치에 기여하는 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해 올해 행사에선 전동화 가속화 계획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에 대한 투자자 전반의 애정은 지난 2년간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 흐름에서도 잘 나타난다. 양사 주가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저점을 기록, 이후 애플과 전기차 협력 가능성이 불거졌을 때 고점을 기록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이 IT와 소프트웨어(SW)에 강점이 있는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하게 된다는 기대감에 단숨에 기업 가치가 치솟은 것이다. 

      이후 과거 수년에 비해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프는 점점 아래로 기울고 있다. 최근 '러시아'라는 외부 변수로 인한 주가 급락을 제하고 보더라도 현대차에 대한 시장의 인식은 내연기관과 전기차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셈이다. 

      증권사 완성차 담당 한 연구원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투자자 입장에서 궁금한 것도,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도 결국은 전동화 가속화 계획"이라며 "지난해 하이드로젠 웨이브 이후 새로운 내용이 없기도 하겠지만, 기업 가치에 득이 될 내용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번 행사에서 현대차가 2030년 SW 매출 비중 목표를 30%로 첫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SW 사업으로의 확장성은 전기차 기업이 전통 완성차 업체에 비해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핵심 요인이다. 행사의 절반이 공용 모듈러 플랫폼이나 배터리 시스템 등 하드웨어(HW)로 채워졌다면 나머지는 SW에 방점이 찍혔다. 구체적으로는 통합제어기 개발 청사진과 함께 올 커넥티드카, 펌웨어 무선 업데이트(FOTA), 데이터 비즈니스, 로보택시 등 SW 중심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 확장 계획을 언급했다. 

      이미 시장에선 모빌리티(HW)는 미끼에 불과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SW 서비스 사업 진출을 위해 전기차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행사 당시 장재훈 대표이사 사장은 "수년 후면 FOTA를 통해 고객들이 계속해서 새 차 타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시총 1위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의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전기차 판매 마진 외에 SW가 새 매출원으로 부상하게 된다면 해당 매출액에 더 높은 멀티플(배수)을 반영해 현대차의 평가 잣대가 구조적으로 바뀌게 된다"라며 "현재 차량 내 OTA와 SW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테슬라에 불과하지만, 현대차가 다른 완성차 기업보다 이를 빨리 구현할 수만 있어도 주가는 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룹 계열사인 기아를 포함한 경쟁사에 비해 소극적이라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하루 늦게 CEO 인베스터 데이를 진행한 기아는 2026년 목표 시가총액으로 100조원을 제시했다. 국내에선 SK그룹이 주로 각 계열사 파이낸셜 스토리와 함께 목표 시총을 제시하곤 하지만, 현대차그룹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룹 맏형 격인 현대차 시총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파격적인 목표인 만큼 상대적으로 전일 현대차의 행사가 묻히게 됐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연말을 전후해 전기차 판매량과 점유율 목표를 높인 데 대한 구체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행사에서 미국과 유럽 등 핵심 시장에서의 전기차 생산 계획에 대한 언급이 또 한 번 미뤄지기도 했다. 전기차 경쟁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한 것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지며 기아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현대차가 경쟁사 대비 소극적이라는 인식은 굳어지고 있다"라며 "노동조합 등 민감한 사안과 부딪힐 수 있지만 어차피 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게 시장과 소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