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에 수익성 악화한 한수원, 高금리에 '신재생 투자' 부담 급증
입력 2022.03.15 07:00
    원자재 가격 폭등…한전·발전 자회사 적자 심화 우려
    文정부 '탈원전' 앞장선 한수원 수익성 저하 도마 위로
    정권말 '정책 비판' 및 친원전 행보… 책임회피 지적도
    신재생 에너지 대규모 투자 …고금리에 '타당성'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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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글로벌 에너지 대란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신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냉정한 시장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포함한 한전 산하 발전 자회사들의 재정건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탈원전에 수익성이 저하된 한수원은 빠르게 오르는 금리와 함께 ‘신재생 전환’ 투자의 부담도 짊어지게 됐다.

      '탈원전 백지화'와 '원전 강국' 공약을 내건 윤석열 정부 출범이 확정되면서 원전업계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당선이 확정된 10일 일제히 원전 관련주가 상승세를 보였다. 다만 시장의 기대감과 별개로, 글로벌 원자재 대란·전기료 인상·원전 생태계 복구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한수원 등 관련 공기업의 '친원전 정책 효과'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해 온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이다.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 논란 끝에 예정보다 3년 앞선 2019년 12월 영구 정지했다. 신한울 3·4호기는 5년째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신규 원전뿐 아니라 기존 원전들도 각종 원전 보수 작업 등을 이유로 원전 가동률이 급감했다. 

      정부가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경영악화와 함께 급격한 기업가치 하락을 보였다. 지난해 한전 산하 6개 발전자회사(한수원·한국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중장기 재무전망 및 계획’ 자료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2025년까지 모두 부채가 2조~3조원씩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부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의 예상 부채비율은 2025년 각각 222%, 227%, 240%로 재정건정성 우려가 제기된다. 

      한수원을 제외한 석탄화력발전이 주력 사업인 발전 5사는 회사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남동발전과 동서발전의 석탄 화력 의존비중은 각각 90%와 62%다. 시장 내 위상도 급락했다. 통상 공기업의 특수채는 채권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발행되지만 발전채는 오버금리로 발행되며 스트레드도 벌어지는 추세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전 산하 석탄 발전사들은 채권시장에서도 ‘팽’ 당한지 오래고, 한수원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 원자력발전을 담당하는 한수원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발전설비는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면 투자 회수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4년간 한수원의 원전 판매 금액 추이를 보면 10조3000억원이었던 원전 판매량은 이후 8조6000억원, 7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정권 후반기인 2020년 9조1000억원을 기록했지만 2017년과 비교하면 1조원 이상 줄어든 금액이다. 

      한수원은 국내 원전 사업이 차질을 빚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왔다. 최근 2년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등에서 사업을 수주해왔다. 다만 해외 시장은 글로벌 정세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위험이 있다. 연초 한수원은 총 300억달러(약 35조원)가 투입되는 이집트의 대규모 원전사업에 참여하는 ‘쾌거’를 강조했다. 러시아 국영 원전회사 로스톰의 자회사인 JSC ASE사가 건설하는 이집트 엘다바 원전 4개 호기의 터빈 건물 등 2차측 건설사업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세부 조건 협상을 마무리 하고 4월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사회의 러시아 제재가 이어지면서 원전 수출도 불투명해졌다. 엘다바 원전이 현재 러시아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 자금을 러시아 정부 차관으로 쓰는 사업 방식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엘다바 원전 건설을 위한 자금을 투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곳간이 여의치 않은데 신재생 전환 투자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2016년 2조4548억원이었던 한수원의 당기순이익은 2019년 3060억원으로 감소했다. 총차입금과 부채비율도 2017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수원은 채권시장에서 꾸준히 조달을 이어가는 공기업 중 하나다. 한수원의 차입금 현황을 보면 국내회사채(64.8%), 해외사채(35.2%)로 이루어져 있다. 2019년부턴 ESG채권 발행도 이어가고 있다. 

      한수원은 ‘종합에너지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래 먹거리 확보 명목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만금 해상풍력발전사업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3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 1.7GW(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설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아직 한수원이 운영중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중 미미하다. 현재 한수원이 운영하고 있는 해상풍력발전설비는 2019년 준공된 60MW(메가와트) 규모의 서남해 해상풍력발전사업 1단계 참여가 유일하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속도 조절 없이는 대규모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전과 한수원, 발전 자회사 등 7개사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신재생발전소 신규 건설과 이에 따른 전력망 구축에 총 34조9500억원을 투입할 것으로 관측됐다. 기관별 설비 투자비용은 한수원이 7조43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 이번 에너지 사태로 인해 더욱 빨리 화석연료를 탈피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명분은 강화된 상태다. 다만 이러한 공감대는 1차적인 배경이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결국 자금 문제다.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타당성’ 자체가 급락할 수 있다. 코로나 등 여러 상황이 맞물리며 정부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 러시아발 에너지 대란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가스, 석탄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올해 한전을 포함한 발전자회사들의 적자는 더 심해질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끌고 오기 위해선 더 투자가 들어가야하는데 당장 정부고, 회사고 돈이 없다. 탄소중립은 시한이 현실적으로 많이 미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수원은 정권 말기에 들어서며 돌연 친원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달 말 채권발행을 위한 투자설명서에서 “9차 전력수급계획은 정부의 점진적 원전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등 친환경 전원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여 장기적으로 회사의 수익성이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환경부에 “원전은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완화하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국회에도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자료를 제출했다. 앞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반드시 병행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며 강조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를 향한 소신발언이란 평도 있지만, '이제 와서'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정권말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강행한 결과는 결국 재정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비판이다. 

      한편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수원 포함 에너지공기업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략이 전면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원전이 주고 '보조 수단'인 재생 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산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명목 하에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시기 등이 조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수원의 신재생에너지 목표 및 의무량도 조절될 수 있다. 다만 탄소 중립 자체는 글로벌 공감대가 강한 상황이고,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장기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속도 조절'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시장의 자율적 감시 및 감독 강화와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추진하던 에너지 공기업 기업공개(IPO) 계획도 문 정부 들어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2001년 한전에서 발전분야를 분리시킨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정부는 2016년 발전 공기업 상장 계획을 밝혔다. 이후 기획재정부가 발전자회사 5곳과 한수원, 한전KDN, 한국가스기술공사 등 에너지 공공기관 8개사의 상장을 추진했으나 2017년 정권 교체 후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달 투자설명서 공시에 "정부정책의 불확실성 및 금융시장 환경을 고려하였을 때, 기업상장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태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전도 상황이 안좋은데 자회사들까지 굳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 더 거센 비판을 감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해당 계획이 진행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