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몸값은 치솟는데…'심사역 인센티브'는 아직 인색한 VC업계
입력 2022.03.31 07:00
    벤처 붐에 VC '높은 성과급' 예상, 현실과 달라
    '운칠기삼' 분위기에 투자 성과 평가절하 되기도
    논란 촉발한 두나무·펍지 구주, 한때 '천덕꾸러기'
    • 벤처기업 몸값은 치솟는데…'심사역 인센티브'는 아직 인색한 VC업계

      벤처캐피탈(VC) 심사역은 벤처 붐을 타고 고공행진하는 성과급을 누릴 수 있는 직업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는 소수에게만 국한된다. 벤처업계 키워드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 떠오르고 많은 공감을 받으면서 성과에 따른 보상은 불투명하다. 모호한 책정 기준 등의 이유로 지급이 지연되거나 지급 규정을 임의로 바꾸는 사례가 거론된다.

      벤처업계의 호황은 올해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금리 인상 기조 등으로 인해 증시 불안정성이 커졌음에도 비상장주식의 기업가치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국내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기업)만 18곳으로 늘었다. VC, 엑셀러레이터(AC) 뿐만 아니라, 신사업을 고민하는 대기업들도 기술확보 차원의 투자 중이다. 

      수적인 증가 뿐만 아니라 이들의 몸집도 불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벤처투자를 받은 벤처기업들의 지난해 평균 기업가치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807억원을 기록했다. 향후 투자 유치 분위기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추가 상승여력도 충분하다. 이를 감안하면 해당 기업들을 포트폴리오로 보유 중인 VC 심사역들의 인센티브 상한선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업계는 '과실 배분'보단 '진흙탕싸움'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소송전도 불거졌다.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투자하며 성과를 올렸던 임지훈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카카오벤처스를 대상으로 성과급 소송을 제기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크래프톤' 투자를 이끈 부경훈 전 대표가 케이넷투자파트너스에 성과급 지급 관련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성과급 논란은 대부분의 VC 하우스에서 겪어온 성장통이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파트너스나 KB인베스트먼트 정도가 인센티브 분배가 잘 되고 있다고 정평 나있다. 그 외 대부분의 VC 중 성과급을 잘 주는 곳은 많이 없다고 보면 된다"라며 "막상 성과급 지급 시기가 도래하면 규정을 바꾸거나 말을 바꾸기도 한다. 회사에서 성과급 규정을 지키지 않는 까닭에 큰 성과를 낸 펀드가 나올 때마다 퇴사자가 속출한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데 대해선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먼저 성과급 분배 방식의 모호함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VC와 심사역 개인은 50대 50이나 40대 60 비율로 성과보수(Carry)를 나눠갖는다. 대표 펀드매니저의 경우에는, 펀드 기대수익률(IRR)이 특정 수준을 넘기면 일정분을 성과급으로 받는 것으로 약정하기도 한다. 다만 목표 IRR이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해당 약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펀드매니저로서 투자를 이끌다가 펀드가 청산되기 전에 퇴사한 경우도 성과급 지급이 애매하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펀드를 이끌던 매니저가 청산 전에 퇴사한 경우라면, 얼굴 붉히며 나간 것이 아니라면 성의 표시로 상품권을 주기도 하고 재입사를 시켜서 지급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분위기도 성과급 논란에 큰 몫을 차지한다. 최근 성과급 논란을 촉발한 두나무와 크래프톤, 두 기업은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해당 두 기업의 구주를 골칫거리로 여겼던 일부 운용사들이 구주매출 시 해당 주식을 '끼워팔기' 할 정도였다. 당시 두 기업의 구주를 떠안으며 '골치아프다'고 토로하던 VC 심사역들은 '황금알'을 품은 셈이 됐다. 

      유망한 초기기업을 발굴해 과실을 누리고자 VC 업계에 뛰어들었던 심사역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불안감을 토해낸다. 일각에선 '심사역들은 다들 똑똑하다. 그러나 똑똑하기만 해서 잘 되는 건 아니더라'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성과급 미지급을 이유로 퇴사를 결심한 심사역들은 대체로 VC 창업에 나서지만 결국 다시 '운'의 굴레에 빠진다는 설명이다. 해당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심사역들끼리 연령대를 기준 삼아 모임을 형성해 뭉쳐도 보지만 가입 요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데 일부는 소외되기도 한다. 아직 딜 소싱까지는 못하지만 향후 비전을 보고 갓 입사한 신입 심사역들은 성과급 미지급 사태가 마음에 걸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원칙을 준수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은 투명히 해야하는 투자업계임에도 불구하고 VC업계에서는 막상 성과급 지급 시기가 도래하면 규정을 바꾸거나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라며 "물론 일부 VC 하우스는 성과급 지급을 충분히 하기 위해 규정을 바꾸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