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사태 계기로 '안전리스크' 부상한 채권시장
입력 2022.04.04 07:00
    건설·석유화학 기업 언제든 대형사고 노출될 수 있어
    '안정성' 최우선하는 투자자들 사이에선 꺼리는 분위기
    ESG 평가뿐만 아니라 유동성 차환리스크 부상도 악영향
    다만 펀더멘탈 훼손할 여지 적어 재무 안정성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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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사태를 계기로 채권시장에서 '안전리스크'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건설·석유화학 기업들은 언제든 대형사고에 노출될 수 있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회사의 경영 및 운영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보는 채권투자자들 사이에서 '예측불허' 건설사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1분기 회사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 사이에선 '안전사고 리스크'가 자금 조달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 1월 HDC현대EP는 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했다가 현산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일어나면서 발행을 연기했다. 다음 달 진행된 한화건설(A-)의 회사채 수요예측은 목표 물량을 모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리밴드 상단에 물량이 쏠렸다. 3년물은 4%가 넘는 고금리에 발행이 결정됐다.

      언제든 대형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채권투자자들 사이에서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현산의 경우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서울시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현행법상 1년 이내 영업정지나 등록말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30일 현산은 이전에 발생한 '학동 붕괴사고'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석유화학기업도 안전사고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 폭발이나 누출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여수에 위치한 여천NCC 공장에선 폭발 사고가 발생하며 사상자가 8명 발생했다. 이에 여천NCC(A+)는 1200억원 모집을 목표로 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이례적으로 한 건의 투자수요도 확보하지 못했다. 관련 기업에 대한 투심은 얼어붙고 있다. 롯데케미칼(AA+)은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3000억원을 상회하는 수요를 모았지만 10년물에서는 미매각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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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채권투자자들의 투심이 싸늘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현산은 유동성이 풍부한 기업으로 평판도 좋았지만 사고가 터지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현산뿐이겠냐'는 우려가 있다. 노이즈에 노출되기 싫은 회사채 투자자들은 아예 건설사 회사채 투자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사고는 예측하기가 어려운 데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고 하는 정성적 관점에서도 치명타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현산의 경우를 봐도 재무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사고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서 투자자들이 건설사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업계서는 '이젠 사고확률도 계산해야 하나'란 말도 나오는데, 과거에도 건설사 사고는 여럿 있었지만, ESG 확대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다 보니 채권업계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 차환리스크가 불거지는 점은 채권 투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이 발행하는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는 규모가 크지만, 차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많다. 이에 한국신용평가사는 현산 유동성 대응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리포트를 발간하는 등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무 안정성에 기반했을 때 건설사 채권은 여전히 좋은 투자처라는 시선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기업의 펀더멘탈을 훼손할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특히 건설사의 경우 최근 몇 년사이 재무구조가 개선되면서 타업종과 비교해 높았던 금리가 낮아지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건설 및 석유화학 기업이 올해 더 걱정해야 할 사안은 실적이다. 고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실적 부담이 높아질 전망이다.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국내 NCC(나프타분해설비) 업체는 원자재인 납사가격은 유가와 함께 오르고 있지만, 제품가격이 둔화하면서 마진이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건설사 역시 철근, 시멘트 등 가격 상승으로 이익률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긍정적 평가를 받던 재무적 평가도 바뀔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