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채권금리에 기업 자금조달 ‘비상’…투자업계도 금리 부담↑
입력 2022.04.19 07:00
    국고채 금리 급등에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
    기업들, 발행 연기·금융사와 '거래' 나서기도
    금리 상승에 PEF 등 투자자도 부담 증가해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며 조달 비용이 늘어나자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발행 계획을 미루는 등 조달비용 최소화에 총력을 다하는 분위기다. 당분간 금리 인상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넘치는 시장 유동성을 발판삼았던 PEF(사모펀드) 등 투자자들도 '태세 전환'에 나서고 있다.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석 달만의 인상이다. 이번 이상으로 기준금리는 2019년 7월 이후 약 3년 만에 1.5%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번 금통위 회의는 한은 총재(금통위 의장) 없이 열렸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금통위가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다음 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총재 공석’으로 열린 금통위가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그만큼 현재 물가 상황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물가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할 정도로 물가와 관련된 문제인식이 크게 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2월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시상태가 이어지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4.1%가 상승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3개월 만에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당분간 물가 오름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금리 인상 국면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1일에는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 긴축과 물가 급등 우려로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연 3.186%)가 9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금리 발작’ 수준의 금리 급등이 나타났다. 

      안팎의 금리 ‘대혼란’ 속 자금을 조달해야하는 기업은 ‘초비상’ 상태다.

      1분기 한산한 발행시장을 보낸 이후, 3월 기업들의 결산이 끝나고 회사채 발행이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지만 ‘금리 발작’에 놀란 기업들은 선뜻 발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가 ‘너무’ 낮았기도 하지만, 연초와 비교해도 최근 조달금리가 급속하게 오른 탓이다. 1년전만 해도 AA- 신용등급 회사채는 3년 만기 기준 1.5% 정도의 금리에서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금은 3.9%의 금리를 지불해아한다. A급 회사채의 조달 금리는 이미 4%대에 진입했다.

      기업들은 조달 타이밍 저울질에 고민이 깊다.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월 미 연준 등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기업들은 금리가 하향안정화하는 시점에 발행하기 위해 최적의 시기를 노려왔다. 그러나 그 사이 금리가 더 뛰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금리인상 속도는 더 빨라졌다. 1%에서 2%로 오르는 데 1년여가 걸렸지만, 2%에서 3%로 뛰는 데 1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지금도 이미 금리가 높은데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도 높아 시기 판단이 어렵다는 평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자비용이 거의 2배 이상으로 올랐으니 기업 경영진들이 완전 비상이다”라며 “연초 금리가 오르기 전 발행해야 한다고 미리 발행해 둔 곳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데, 이제부터 발행을 해야 하는 기업들은 발행 리스크가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시장 관계자는 “2010년만 봐도 상반기에 AA급 회사채가 5%대 금리였는데, 이후 반년간 점차 줄어드는 등 금리가 높다고 바로 충격이 크진 않았다”라며 “다만 그때는 점진적으로 상승했지만 지금은 2%에서 4%로 두배 뛴 셈이니 충격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기업들 대응은 제각각이다. 제철이나 건설 등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기업이나, 재계 최상위권 그룹 계열사들은 금융사들과 '서로 주고 받는' 거래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대신 보험사들에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 채권 물량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현대건설은 연초부터 발행을 계획했으나 한 번 발행을 미룬 이후 아직 미정이다. 연초에 오버 발행이 일반적인 분위기였음에도 높은 금리를 이유로 연기했는데, 지금 발행을 하려면 당시의 민평금리+가산금리 보다도 한참 높은 금리를 줘야 하기 때문에 발행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남은 4월 기간 동안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서는 발행사는 삼척블루파워(A+), 풍산(A+), SK지오센트릭(AA-), 이마트(AA), CJ대한통운(AA-), 세아제강(A+), 두산에너빌리티(BBB-), 호텔신라(AA-), 대한항공(BBB+) 등이다. 

      차라리 “은행에서 빌리는 것이 났겠다”는 판단도 많아졌다. NH농협은행의 1분기 기업 대출 가운데 31.5%가 대기업 대출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기업대출은 세 달 연속 증가세다. 은행들도 가계대출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기업대출 영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차환(발행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지 말고 그냥 상환하려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부터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조달비용 감당을 각오해야 한다”며 “올해 기업들의 수익성 전망도 좋지 않아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은 여러 리스크 요인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직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당분간 회사채 시장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을 펀딩(funding)하고 딜(deal)을 진행하는 투자자들도 금리 부담이 크긴 마찬가지다. 딜 자체의 금리도 오르지만, 경제 전반 변동성이 높아지며 시장에 돈이 풍족하게 돌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3년 전만 해도 PEF들이 엑시트(투자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MBK의 코웨이 매각이나 IMM PE의 태림포장 및 태림페이퍼 매각 성공 등으로 흐름이 달라졌다. 회사가 좋기도 했지만, 저금리 상황의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났던 영향도 컸다.

      한 PEF 대표는 “리파이낸싱도 어렵고 신규 딜(거래)도 인수금융을 쓰기도 부담스럽다. 변동성 커지면서 기존 수익률 목표보다 ‘먹을 것’이 훨신 줄어들 것”이라며 “그동안은 돈이 시장에 많아 회수 성과가 좋았고, 전략적 투자자(SI)들이 신사업 한다고 투자가 많았는데 이제는 금리가 빠르게 오르니 모두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