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 “큰 거래 잦은 은행 특성 상, 미리 감지 쉽지 않아”
우리은행 수시감사 들어간 금감원, 감사 담당이던 안진도 조사 들어가
회계감사 목적은 내부부정 탐지보단 재무재표 점검…직원 횡령 탐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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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직원이 6년 간 약 600억원의 은행 돈을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연이은 횡령 사건에 신뢰도 높은 제1금융권마저 자금 관리 통제 시스템에 수년간 구멍이 났다는 건데, 회계법인의 감사 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대규모 자금 거래가 잦은 은행 시스템상 600억원 정도의 규모는 현실적으로 내부 통제 시스템이나 감사 시스템에서 감지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28일 금융권과 경찰에 따르면 우리은행 내부 감사 결과 우리은행 직원 A씨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간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은 전날(27일) 밤 경찰에 긴급체포 돼 조사를 받고 있다.
횡령액 출처는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서 이란 가전그룹 엔텍합으로부터 몰취한 계약금의 일부로 파악됐다. 당시 채권단이었던 우리은행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위해 이란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매매대금 관련 이견으로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엔탁합 측은 2015년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을 반환해달라는 투자자·국가간 소송(ISD)를 제기했고 2019년 한국 정부가 최종 패소했다.
A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난 건 ISD 패소로 몰취된 계약금을 엔텍합에 반환하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패소 이후에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인해 송금을 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1월 이란 제재 해제 분위기가 퍼지며 미국 정부가 배상금 송금을 특별 허가했다.
당시 기업개선부 실무자였던 A씨는 계약금이 보관된 계좌의 관리 담당자로, 인출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2012년 말 100억원 가량을 한차례 인출하고 별다른 제지나 감사가 없자 2015년, 2018년까지 총 세 차례에 거쳐 자금을 모두 빼낸 것으로 전해졌다. 올 초 내부 감사를 개시해 횡령을 최종 확인한 감사실이 27일 경찰에 고발하자 해당 직원은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금융감독원도 우리은행에 대한 검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곧바로 우리은행에 대한 검사를 착수할 예정이며, 수시검사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고, 소비자 보호, 리스크 등 사안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수시 검사가 진행된다. 우리은행 측에 따르면 실제로 오늘 오후부터 서울 중구 소재 우리은행 본사에서 수시 검사가 시작됐다.
이번 횡령 건은 회계 오류에 대한 감사를 맡아온 회계법인 업계로도 퍼지는 모양새다. 6년 간 직원이 개인 계좌로 돈을 빼돌렸는데, 자금 흐름을 면밀히 살폈다면 조기에 잡아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횡령이 발생했던 당시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지정감사인은 딜로이트 안진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딜로이트안진에도 현재 금감원이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딜로이트 안진 측도 현재 상황을 파악 중이며,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잦은 은행 시스템 특성상 500억원 정도의 자금흐름은 내부 통제 시스템이나 회계감사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이 많다. 회계법인은 금융기관 조회서를 보고 현금흐름에 대한 감사를 하는데, 은행 계정에 자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명확한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은 비교적 복잡한 전산 자료로 돼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횡령 건은 A씨가 계좌까지 해지했기 때문에 내부통제에 한계가 있었고, 워낙 큰 규모의 자금이 오가는 것이 일상인 금융권이다 보니 500억원 정도는 이상을 감지할 만큼 큰 거래 규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회계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감사를 할 때, 모든 거래를 다 들여다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거래 일부를 샘플링해서 감사하는데 그마저도 큰 거래 규모 위주로 선정되기 때문에 500억원 정도면 감사 샘플링에도 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감사만으로 기업의 내부부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변호사는 “회계감사의목적은 내부 부정 적발이 목표가 아니라 회사가 제시하는 재무제표와 감사인이 보는 재무제표 차이가 없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500억원도 6년에 걸쳐 장기간 했기 때문에 그해 그해를 놓고 보면 금액적 중요성이 높지 않아 수치가 차이났다고 하더라도 ‘부적정’이나 ‘한정’ 의견을 내놓기도 어려웠을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정황과 이후 계좌 관리 상황 등 세부적인 내용은 조사가 진행되는대로 공개하겠다"며 "횡령금액 회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