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두산 이어 LG·LX까지…반도체 아래 자리 펴는 대기업들
입력 2022.05.13 07:02|수정 2022.05.13 07:03
    車반도체 성장 맞춰 대기업 속속 반도체 생태계 진출
    구조적 성장 확실한데…입장료 '조 단위' M&A·CAPEX
    韓 공백인 화합물·전력반도체 주목…현대차·LG·LX까지
    재무 부담 상당할 전망…가장 잘 준비된 건 사실상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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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에 이어 두산과 LG, LX까지 대기업의 반도체 생태계 진입이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등 막대한 신규 수요처가 등장하며 기회가 열리고 있는 덕이다. 당장 진출 가능한 시장은 비메모리 내에서도 아날로그 반도체 정도지만 입장료로 조 단위 인수합병(M&A)과 설비투자(CAPEX)가 필요하다. 때맞춰 매그나칩반도체가 매물로 등장했고 지배구조 문제가 얽힌 DB하이텍의 거취 문제도 꾸준히 거론된다. 

      진입에 성공한다면 구조적 성장에 올라탈 수 있지만 재무적 부담은 막대할 전망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본을 갖춘 경우에도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단 분석이다. 메모리 2위 SK하이닉스를 보유한 SK그룹 역시 비메모리로 손을 뻗치고 있어 국내 경쟁부터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20년 현대차그룹이 자체 탄화규소(실리콘카바이드, SiC) 전력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이후로 대기업의 반도체 진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두산그룹의 경우 구조조정을 마친 뒤 후공정에 속하는 반도체 테스트 업체 테스나를 인수했고, 현재 LG그룹에서 분리한 LX그룹이 매그나칩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 역시 화합물 반도체 기반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당장 설계나 생산에 뛰어들기 힘든 두산그룹도 이어지는 M&A를 통해 반도체를 주력 포트폴리오로 키워낸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시장은 결국 전기차 시장이다. 비메모리 내에서도 차량용 반도체와 같은 아날로그 반도체는 전기차 시장 성장의 수혜를 고스란히 누릴 예정이다. 특히 고성장이 예상되는 화합물 반도체에서 물밑 경쟁이 치열한데 올 들어 진행 중인 M&A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기차 시장 개화에 맞춰 지난 2년 동안 배터리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그룹사 신사업이 전개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성장으로 인한 수혜는 배터리에 이어 반도체까지 확장할 예정인데, 수십조가 필요한 메모리나 시스템온칩(SoC)과 같은 로직 시장에 진출 가능한 기업은 국내에 삼성과 SK그룹밖에 없다"라며 "비교적 투자 부담이 덜하고 공급부족이 지속되는 데다 전방 수요가 확실한 차량용 반도체 등 아날로그가 그나마 국내 대기업이 진출 가능한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전력반도체 외 LCD나 OLED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이나 센서(CIS), 반도체 소자 등을 일컫는다. 흔히 말하는 CPU나 AP 등 컴퓨팅 목적 고성능 비메모리 반도체(로직)와 달리 주로 8인치(200m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만들어진다. 로직에 비해 부가가치가 적어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매출 비중은 10% 수준이다. 그러나 사물인터넷(IoT)나 차량 전동화에 따라 쓰임새가 가파르게 늘어나 구조적 성장이 기정사실화한 산업으로 부상했다.  

      그중에서도 화합물 반도체 기반 전력반도체는 전기차 시대 들어 시장 규모가 승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에서 발생한 전력을 차량 내 곳곳에 뿌려주고 관리하는 역할인 만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고성능 배터리 수준으로 중요성이 높아진 탓이다. 화합물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웨이퍼와 달리 SiC나 질화갈륨(GaN)처럼 두 가지 이상 원소로 구성된 반도체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 시장에 어떻게 진입하느냐인데 M&A에 이은 설비투자가 유력한 선택지로 꼽힌다.

      아날로그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아날로그 사업을 가지고 있지만 CIS를 제외하면 대부분 해외 기업이 과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전력반도체의 경우 국내 시장 규모는 약 2조원 안밖에 불과하다.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매그나칩과 DB하이텍을 포함해 영세 팹리스가 다수 있지만, 대부분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만큼의 자본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평이다. 

      규모가 큰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을 인수하며 현대차와 공동으로 SiC 전력반도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그룹 공용 전기차 플랫폼인 E-GMP에 독일 인피니언의 전력반도체가 탑재된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비교적 영세한 국내 파운드리를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연달아 조 단위 설비투자가 필요해 실익이 불투명하단 지적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과거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DB하이텍의 새 주인으로 고려되기도 했다"라며 "그렇다고 현대차가 차량용 반도체 관련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직접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도요타와 덴소 정도가 일찌감치 SiC 전력반도체 설계와 생산까지 내재화를 마쳤지만, 현대차그룹이 비슷한 전략을 취하기엔 부담이 큰 시점"이라고 말했다. 

      매그나칩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LX그룹의 경우 인수 이후 시너지가 클 것으로 보이지만 재무적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그나칩은 디스플레이 솔루션과 파워 솔루션 사업이 두 축으로, DDI와 전력반도체 매출이 고른 편이다. SK하이닉스에 매각한 키파운드리(청주 파운드리) 외 구미에도 8인치 웨이퍼 팹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외국계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한 약 1조5000억원 규모 매각 작업이 무산된 터라 예상 매각가도 최소 1조원 이상으로 거론된다. LX그룹 계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인 LX세미콘 사업이 DDI에 편중돼 있어 매그나칩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겠다는 청사진 자체에는 큰 의문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매그나칩을 인수하더라도 화합물 기반 전력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에 올라타려면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현재 SiC 웨이퍼는 4~6인치가 대부분으로 기존 실리콘 기반 8인치 웨이퍼 팹에 그대로 적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SiC 전력반도체의 공정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생산성을 확보하려면 SiC 웨이퍼 수급까지 고려해 양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라며 "인피니언이나 ST마이크로 등 선두 업체도 웨이퍼 업체 인수전에 나서고 있다. 1조원 이상에 매그나칩 M&A를 성사시키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후속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이 같은 준비가 가장 착실히 이뤄지는 곳은 SK그룹이다. 이 때문에 현재 화합물 반도체나 아날로그 시장에서 기회를 노리는 대기업들은 글로벌 상위 과점 업체 이전에 국내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K그룹은 지난 수년 동안 SiC 전력반도체 관련 밸류체인 구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SK실트론은 지난 2019년 듀폰에서 SiC 사업부를 인수한 데 이어 8인치 SiC 웨이퍼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엔 SK㈜가 예스파워테크닉스의 지분 95.81%를 취득해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예스파워테크닉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SiC 전력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이 가능한 기업이다. 지난해 지분 투자금을 포함하면 인수 가격은 약 1600억원 안팎으로 관련업계에선 가성비 높은 거래란 평이 나온다. SK온이 보유한 전기차 고객사와 충전기 사업,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그룹 내 친환경 사업 전반을 포함하면 사실상 밸류체인 구축을 마친 셈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의 매그나칩 인수 필요성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