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거품 차례로 걷히는 성장주, 코인, 개발자…다음 타깃은 친환경?
입력 2022.05.25 07:00
    유동성 회수 시점 전방위 멀티플 축소·현실화 국면
    풍력·태양광·수소 친환경 테마도 '제값' 찾아갈 전망
    친환경株 조정 속…좌초자산 '화석연료'만 고공행진
    美·EU 중심 ESG 드라이브 자체 재점검 필요 언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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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유동성으로 만들어진 가격 거품이 차례대로 꺼지는 가운데 다음 순서가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친환경 테마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금리 인상기 들어 그간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비싸게 거래된 모든 것들이 제값을 찾아가는 수순인 만큼 친환경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다. 

      기후변화 위협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급하게 진행한 에너지 전환 정책도 당장의 공급 실패로 명분을 잃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구 중심의 ESG 드라이브에 재점검이 필요하단 얘기까지 나온다. 반면 좌초 자산으로 분류되던 정유·가스 기업의 주가가 치솟자 시장에선 "내 죽음에 관한 보도는 굉장히 과장된 것"이란 마크 트웨인의 경구가 회자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S&P 500 지수의 선행 주가순이익(PER) 멀티플(배수)는 16.6배를 기록했다. 지난 25년 동안의 평균선인 16.85배 아래로 떨어진 것.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 금리 인상과 함께 그간 시중에 풀어둔 돈을 거둬들이겠다고 예고하자 시장 전체의 멀티플이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그간 유동성에 올라타 미래 가치를 선반영한 기업일수록 더 큰 조정이 예고된다. 

      올 들어 국내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메타버스나 대체불가토큰(NFT)을 앞세운 신사업은 시장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비상장사의 기업공개(IPO) 실패 소식도 잇따른다. 무턱대고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연봉 급등에 동참한 기업의 부작용도 언급되는데, 각기 원인이 달라 보이는 현상의 출발선에 유동성 축소가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돈이 풍족할 때야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지만 정반대 상황이 닥치면서 손바닥 뒤집듯 입장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서 미래에 어떻게 하겠다는 주장은 매력이 없어졌다. 이미 시장에서는 비용 절감에 특화한 재무최고책임자(CFO) 몸값만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논리로 풍력·태양광 발전이나 수소경제와 같은 신재생 에너지 중심 친환경 테마도 내리막길을 걸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달 초 JP모건은 '방 안의 코끼리'라는 제목의 연간 에너지 보고서를 내놨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대전환을 통해 기후변화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명분 때문에 실제 에너지 시장의 민낯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정유와 가스 등 화석 연료 산업의 현금흐름이 날아가는 데 반해 상당수 신재생 에너지 기업, 특히 순수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현금흐름이 당분간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연초부터 헤지펀드에서 ESG 관련주에 숏 포지션(공매도)을 잡고 석유기업에 투자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국내에선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라며 "해외에선 ESG 트렌드를 두고 정치적 올바름이 에너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재생 에너지 기업과 화석연료 기업 주가의 상대 수익률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엔 아람코가 애플을 꺾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기도 했다. 

      개별 기업을 벗어나 국가 차원으로 확장해서 봐도 이 같은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시장이 살벌한 조정을 거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시장은 올해에만 1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유동성에 기대 만들어진 신기루가 사라지자 ESG 시대 들어 외면받던 좌초 자산의 가격만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기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에너지 시장 수급 차질이 발생한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지난 수년 동안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진행된 에너지 전환 정책의 허점이 뒤늦게 드러나는 거란 목소리가 늘고 있다. 전력 발전에서 신재생 에너지 사용 비중은 대폭 늘어났지만 실제 산업 생산과 운송수단, 난방연료 등은 대부분 화석 연료에 의존 비중이 높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정유·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몇몇 정유, 화학 기업에서는 글로벌 기관 압박 때문에 시작한 친환경 신사업이 도저히 기존 사업 수익성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으니 대응할 논리를 마련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하는데, 기존 사업 지분을 팔거나 한 기업은 바보가 됐다"라며 "어떻게 보면 계속 돈이 나올 수 있는 사업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좌초 자산으로 분류해버리면서 기업 입장에서 역효과만 낳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유럽은 실제 화석연료 수요 감소 속도보다 더 가파르게 생산을 줄였다가 현재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지난 4월까지의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 들어 지난 15년 중 가장 큰 폭의 재정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역설적이게도 전쟁 비용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인데, 반면 유럽은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춰잡고 있다. 

      지난해 국내 주요 그룹 대부분이 참가한 수소협의체에 대한 기대감이나 여기에 반영된 주가 기대감 역시 점점 시들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JP모건에 따르면 수소 관련 글로벌 주식은 2019년 이후 지난해까지 세 배 이상 급등했다가 최근 35~40% 이상 조정을 거쳤다.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수소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2% 안팎에 머물며 변함이 없었는데 가격만 뛴 데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신재생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그나마 배터리 전기차 시장은 꾸준하게 침투율을 끌어올리면서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수소 경제 기대감은 수십년 뒤로 다시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에너지 전환에 따르는 비용이나 실제 진행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이 급등한 데 대한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