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를 땐 '부실 우려' 금리 떨어지니 '수익성 우려'
금감원장 주문대로 보통주자본 늘리려면 대출 줄여야
기존 정책과도 결 다르고 비현실적..."위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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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금리가 오를 땐 '경기침체 우려'라며 주가가 약세를 보이더니, 시장 금리가 내리니 '수익성 악화 우려'라며 주가가 더 급락하고 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은행ㆍ보험주의 증시 내 소외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리 상승이라는 호재에는 둔감하게, 하락이라는 악재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으로 상징되는 규제 리스크까지 부각하며 수급 균형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배당 외에는 이렇다 할 투자 매력을 갖추지 못한 금융회사들도 잘한 건 없다는 지적이다. 외부 변수에 따른 변동성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애먼 주주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국내 은행주 대표지수인 KRX 은행지수는 20.88% 급락했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13%, 코스닥 지수는 15.5%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은행주는 가치주ㆍ방어주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수 대비 하락폭이 30% 이상 더 컸던 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는 평가다.
코스피 지수가 급락한 6일에도 주요 은행주는 3% 가까운 낙폭을 보이며 지수보다 약한 모습이었다. 이날 보험업종 역시 '텐트럼'(발작)을 경험했다. 생명보험ㆍ손해보험 가릴 것 없이 주요 보험주가 6% 이상 급락했다. 외국인 보유량이 많은 대형사 위주로 매물이 쏟아져나오며 주가가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7일 코스피는 반등에 성공했지만, 은행주와 보험주는 약세를 지속했다.
국내 증시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이들 은행ㆍ보험주의 부진은 특히 눈에 띈다는 평가다.
연초 이후 지속된 약세장의 핵심 키워드는 '금리'였다. 물가 급등(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급히 올렸고, 이에 따라 시장금리 역시 역대급 폭등을 거듭했다.
금리 상승은 통상적으로 은행ㆍ보험주에 유리하다. 은행의 경우 순이자마진(NIM)이 커지며 수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말 잔액기준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은 2.37%로, 2014년 10월 이후 7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험사 역시 부채듀레이션(잔존 만기)이 자산듀레이션 보다 길기 때문에 금리 상승이 자기자본 및 기업가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들에게도 올해 3월까진 고금리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2분기 들어 분위기가 반전했다. 은행의 경우 고금리에 따른 부실자산 우려가, 보험사의 경우 보유 채권 평가 손실에 따른 재무 불안 우려가 원인이 됐다. 이후 6월 중순까지 미국은 물론, 한국도 시중 금리가 급등세를 유지했음에도 불구, 은행ㆍ보험주 주가는 약보합 혹은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금리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며 일제히 급락세로 돌아섰다. 미국 국채 금리는 3년ㆍ5년ㆍ10년 등 전 구간에서 3%선 아래로 내려왔고, 국내 국채 금리 역시 3년물은 지난달 17일 3.75%에서 최근 3.22%로, 10년물은 3.80%에서 3.28%까지 하락했다.
이전까지 금리 상승의 부정적인 영향을 주가에 반영했다면, 금리 반락시 주가 역시 반대로 움직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국내 은행ㆍ보험주는 이번엔 금리 하락의 부정적인 영향을 주가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은행 순이자마진ㆍ보험사 이차손익 하락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NH투자증권은 "6일 보험주 주가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금리 하락 가능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며 "생명보험은 지금까지 금리 상승 구간에서 별다른 주가 상승이 없었던 만큼 전일 주가 하락은 다소 과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은행ㆍ보험주 주가 약세를 두고 시장 외 변수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행보가 손꼽힌다. 이 원장은 최근 주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들과 릴레이 회견을 가지며 예대마진 축소와 자본건전성 확보를 주문하고 나섰다.
은행이 보통주자본비율을 높이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보통주 유상증자를 하거나, 대출을 줄여야 한다. 보통주 자본 규모 대비 위험자산 규모 비율이 보통주자본비율인 까닭이다.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 주당 주주 가치를 희석시키거나, 영업 규모 자체를 줄이라고 주문한 셈이다. 보험사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을 요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2~0.5배에 불과한 상황에서 증자를 통해 주당순이익(EPS)까지 떨어뜨리라니 상장 보험사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일 것"이라며 "신(新) 국제회계기준(IFRS14) 및 신 지급여력제도(K-ICS) 조율을 통해 회계장부상의 보험사 부담을 줄여주던 기존 정책과도 조금 결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던 '실세 금감원장'이 금융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듯한 모습에 대해 반발도 적지 않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자리이며, 기존 정책과 제도가 잘 실천되는지 관리감독하는 자리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의 임명 공백이 길어지는 사이 검사 출신 실세 금감원장이 전면에 나서며 '시장주의'보단 '관치'에 가까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글로벌 변동성의 한복판에서 강단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이런 상황에서 실세 금감원장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금융회사들은 위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