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까지 시간 벌기 나선 한화그룹
입력 2022.08.04 07:00
    지배구조 개편서 지주사 전환 꺼리는 모습 드러낸 한화
    "IFRS17 도입 시 주가 상승" 서둘러 한화생명 자회사化
    '한화정밀기계' 인수해 ㈜한화 사업부문 강화 발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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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화그룹의 이번 사업구조 개편은 지주사 전환 요건을 우회하는 식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기 전 ㈜한화가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해 ▲자회사가 되는 한화생명보험의 지분법 가치를 관리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한화정밀기계를 100% 자회사로 인수하는 등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지주비율)이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 추후 대응이 가능한 구조를 짠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은 지주사 전환 요건이 발동하지 않도록 시간을 번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투자 자산을 평가할 때 원가법을 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계기간 중 발생한 이익이나 손실은 모회사 ㈜한화의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자회사 지분 반영 시점에서 지주비율이 50% 아래라면 이후 추가적인 구조 개편 없이는 지주사 전환 요건을 우회할 수 있는 셈이다. 

      한화그룹은 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화를 비롯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임팩트 등 3개 계열사의 사업재편 계획을 발표했다. 분산돼 있던 방산 부문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으로 집중시키고 한화생명 지분 25%를 보유한 한화건설을 ㈜한화에 흡수합병시켜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100% 자회사 한화파워시스템은 한화임팩트 산하로 이동했다. 

      지난 상반기 중 ㈜한화가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에선 한화그룹의 지주사 전환 여부에 주목해왔다. 한화그룹은 승계 과정 조세부담 완화를 위해 언젠가 지주사로 전환해야 할 거란 평가를 받아왔다. 

      현재 한화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아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지주비율의 50% 이상인 회사는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지난해말 기준 ㈜한화의 지주비율은 약 48%에 달했다. 이 때문에 알려진 대로 ㈜한화가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고 한화디펜스가 ㈜한화의 방산 사업 부문을 가져갈 경우 지주비율이 50%를 넘길 가능성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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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인 개편안이 공개되며 한화그룹이 현재로선 지주사 전환 의지가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기관투자자(이하 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IR)에서 한화그룹은 의도적으로 지주비율을 50% 아래로 관리하는 방안을 택했다고 직접 언급했다. IFRS17이 도입되는 2023년 이전에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며 ㈜한화의 지주사 전환 의무를 우회했다는 얘기다.  

      아직까지 보험업은 IFRS9 기준에 따라 자산은 시가로, 부채는 원가로 평가받는다. 내년 1월1일부터 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의 자산과 부채 모두 시가로 평가받게 된다. ㈜한화는 내년 이후 한화건설을 합병할 경우 자회사로 올라서는 한화생명보험 지분(43.3%)의 가치가 약 2조5000억원가량 상승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IR 중 투자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내년에 합병하면 지주비율을 초과할 수 있어 올해 합병을 택했다"라고 설명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 IFRS17 도입으로 부채도 시가로 평가되면 한화생명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본 것으로 2조5000억원이라는 숫자는 한화 측의 추측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이처럼 예측이 불가능해질 내년보다는 올해를 합병 시기로 삼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지주사 전환 의지가 없다는 걸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말했다. 

      ㈜한화가 계속해서 자체 사업을 강화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100% 자회사인 한화정밀기계를 인수해 추후 '모멘텀' 사업 부문과 합병시킬 계획이라 밝혔다. 동시에 100% 자회사이던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며 방산 부문의 물적분할 후 매각으로 인한 기업가치 축소 우려를 일축시키기도 했다. 

      한화정밀기계를 100% 자회사로 둔 채 추후 합병 가능성만 드러낸 것도 향후 지주비율 관리를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화그룹 측은 "이번에 인수한 한화정밀기계를 기존 ㈜한화의 '모멘텀' 사업부문에 합병시킬 계획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수주 호재 소식이 들리는 등 방산 시장의 전망이 밝은 가운데, 한화그룹의 관련 계열사들이 통합된 것이어서 사업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라며 "몇년 새 정부가 한 기업에서 여러 무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주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 통합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지주사 전환 시점을 한 차례 늦추면서 한화그룹은 남아 있는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는 평가다. 한화그룹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주도하던 태양광 사업은 최근에야 흑자전환을 해내며 시장의 불신을 씻어냈다. 지난해 김 사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사업도 수익화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짙다.

      3남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승계의 핵심으로 꼽히는 '한화에너지'의 지분가치 확대 작업도 남아있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승계 시나리오대로라면, ㈜한화와의 합병 전 한화에너지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합병비율을 한화 3남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한화에너지 자회사인 한화임팩트는 이번에 한화파워시스템을 인수, 수소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엔 승계 전 지주사 전환 작업을 하게 되겠지만, 이번 개편안으로 아직은 지주사로 전환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라며 "아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건재한 만큼 지주사 전환까지 시간을 좀 벌어 그간 벌려놓은 사업들에서 성과를 먼저 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