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르는 대기업 지배구조개편…불황형 합병이 늘어난다
입력 2022.08.24 07:00
    포스코·한화·동원 등 합병 작업 시동
    사업재편 통한 선택과 집중 목표
    비용통제, 지배력 강화 효과도
    2012년 불황형합병 급증 때와 유사
    대기업發 통합 전략, 확산 가능성도
    합병 과정서 주주가치 제고도 과제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의 대기업들은 생존 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기업들의 분할과 상장, 이를 통한 사업 확장 전략이 자본시장에 풀린 유동성의 힘에 의해 가능했다면 자본이 말라가는 시대, 성장 보단 내실에 주력해야하는 시점이 도래하면서 기업들의 새판 짜기는 '쪼개기' 보다는 '뭉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 나타나는 '불황형 합병'에 가깝다.

      지주회사 전환을 마친 포스코그룹이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처음으로 꺼낸 카드는 포스코에너지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합병이다. 상장회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비상장 계열사 포스코에너지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포스코에너지는 유가증권시장에 우회상장하는 효과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그룹 에너지 사업의 주축을 흡수함으로써 그룹 내 위상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포스코홀딩스는 상장회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지배력을 높이며 기업가치 제고란 노림수를 기대해볼만 하다. 사실 포스코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향후 자회사 상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번 고육지책과도 같은 합병 방안을 통해 지배구조개편의 방향성을 제시했단 평가를 받는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빠르게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그룹은 단연 한화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룹 내 방산관련 사업의 주축으로 재편하고, 한화임팩트는 수소사업의 밸류체인을 강화한다. ㈜한화는 방산 부문을 떼어내는 대신 글로벌·건설·기계 부문으로 사업부를 재편한다. 

      이번 사업부 재편은 당장 지주회사 요건이 발동하지 않도록하기 위한 작업 그리고 경영권 승계 작업과 떼어내 평가할 순 없다. 다만 사업적으로 연관성이 큰 계열사들을 한 데 묶음으로써 각 사업별 통제력을 강화해 의사결정 구조의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단 긍정적인 요소도 인정할만 하다.

      롯데제과는 롯데푸드와 합병해 빙과사업을 일원화했다. 이를 통해 빙과사업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올 2분기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산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동원산업은 오는 30일 주주총회를 열어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결의한다. 주주들의 반발에 합병비율을 재산정하는 홍역을 치렀지만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현금 여력이 있는 동원산업이 주체가 돼 직접 활발한 투자활동을 펼칠 수 있단 기대감도 있다. 

      타그룹과 손잡고 사업부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보인다. 지난달 CJ그룹과 KT그룹은 티빙과 시즌의 오는 합병을 결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경쟁력 강화에 주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오는 12월 최종 합병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새 합병 법인의 최대주주는 CJ ENM, KT스튜디오지니는 3대 주주가 된다.

    • 잇따르는 대기업 지배구조개편…불황형 합병이 늘어난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까지만해도 분할과 재상장 등으로 지배구조개편에 나선 것과는 별개로 최근 대기업들의 합병 전략이 눈에 띄는 것은 사업 재편을 통한 내실 강화의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분할과 재상장을 통한 전략은 제도적으로 가로 막힐 가능성이 높아졌고 과거와 달리 주주들의 반발 가능성도 상당히 커졌다.

      우회전략으로 사용하는 합병의 경우 사업부를 합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비용을 통제하면서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내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들의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오너 일가 또는 최상단에 위치한 컨트롤타워는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자회사를 신설하거나, 사업부를 분할하는 과정은 결국 기업의 비용증가와 연결된다"며 "최근의 합병 사례들을 살펴보면 지배구조개편이란 목적도 있지만 사실상의 비용통제와 지배력 강화 이를 사업적 시너지 효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들로 비쳐진다"고 말했다.

      경기의 불확실성이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한 데 뭉치는 현상은 과거의 사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2년 유럽국가의 재정위기는 가파른 금리 상승을 불러왔다. 국내에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며 저축은행의 도산 사태가 잇따랐는데 당시 코스피, 코스닥 상장 기업들의 합병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쇼핑의 백화점부문을, 롯데쇼핑은 롯데미도파를, 롯데삼강은 롯데햄을 각각 합병했다. 포스코엠텍-나인디지트·리코금속, 포스코에너지-신안에너지·포항연료전지발전, STX메탈-STX중공업, 하림홀딩스-주원·그린, 동원시스템즈-대한은박지, 크라운제과-크라운베이커리 등도 대표적인 합병 사례로 꼽힌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불황형 합병 사례는 중견·중소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계까지 확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유동성이 말라가는 시점에 예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테크 기업들, 성장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고 투자를 받아왔던 스타트업의 경우 동종업계 또는 해당 산업에 진출을 꾀하는 대기업군에 흡수하는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의 합병 과정에선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지배구조개편과 사업 시너지 효과란 대의명분 아래 일부 투자자들이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주주가치제고와 ESG 경영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통합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고, 시너지 효과에 대해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사실 자본시장의 투자자들, 그리고 기업 실무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수후통합(PMI)의 과정인데 기업이 목표했던 시너지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선 이에 대한 우선적인 대비도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