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공법인 줄…또 우회로 택한 현대차그룹의 아쉬운 소통 방식
입력 2022.08.31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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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번엔 정공법을 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적어도 4년 전 일방적인 지배구조개편안을 내놓아 투자자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던 현대차그룹이라면 사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잡음이 없을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였다.

      현대모비스는 이미 자회사 신설 방안에 대해 이사회 안건 상정 계획을 수립했고, 신규 자회사 설립 일정까지 계획했다. 그러나 주주와 투자자, 관련 업계 그 누구도 명확한 방안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없다. 현대모비스의 주주와 임직원은 물론 관련 계열회사의 투자자들까지 그룹의 불명확한 사업 방향성, 어설픈 지배구조개편의 밑그림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밝힌 자회사 신설 계획의 효과는 크게 2가지이다. 모빌리티 부문과 제조부문을 분리해 각각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 그리고 현대모비스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고용하는 효과 등이다. 이를 위해 모듈과 부품제조 부문을 담당하는 각각의 자회사를 신설하고 자회사 지분은 현대모비스가 각각 100%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자회사를 신설해도 현대모비스의 현재 사업구조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연결 기준 재무제표의 변화가 없고 현대모비스의 지배력도 그대로 유지된다.

      한 가지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부분은 기획·영업·재경·R&D 부문 모두 현대모비스에 존속하지만, 신설하는 자회사는 독립적인 경영체제로 운영하면서 생산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단 목표이다. 신설 자회사가 특수목적법인(SPC)이 아니고서야 현대모비스에 경영과 관련한 모든 기능을 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신설 법인이 명목상의 회사일뿐이라면 이 같은 성장 전략을 내놓기 어렵다.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번 사실상의 사업 분할은 물적분할이 아닌 현물출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회사 신설은 9월 이사회 의결, 11월 설립이 예정돼 속전속결로 진행한다. 물적분할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갖춰야하는 사안으로 주주들의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주주총회를 개최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 주주들을 설득작업이 상당히 번거롭고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성장 동력은 모호하고, 주가는 현대차와 기아에 비해 지지부진하다. 분할에 대한 명확한 목적이 설명되어야하고, 환원책에 대한 요구가 거셀 수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에서 11월 자회사 설립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도(?) 주총을 개최할 물리적인 시간은 부족하다.

      올해 초 KT그룹의 분할도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다. KT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클라우드 사업부문을 떼내 신설법인을 설립했다. 1조6000억원가량의 자산을 신설법인에 이관, 1500억원으로 법인의 주식을 취득했다. KT는 자본시장의 화두였던 물적분할과 관련한 이슈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KT그룹은 모호하지만 “KT클라우드의 주식을 배당형식으로 나눠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나름의 주주환원책을 발표한 것이 현재의 현대차그룹과는 다른점이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순환출자고리(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시작점이다.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약 7.2%)을 넘겨받는다면 경영권 승계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기업가치가 정체하는 것이 어찌보면 정 회장의 승계 스토리에서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이다. 지금은 지배구조개편의 최적의 타이밍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모비스의 매출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모듈과 부품 생산 사업을 자회사에 맡긴다? 하지만 지배구조개편과는 상관이 없다? 

      회사 측이 내놓은 설명은 상당히 모호했고 세부방안이 더 자세히 나오지 않은 현재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에 투자하는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현대차그룹을 오랜기간 연구해 온 연구원들 또한 이번 자회사 신설안을 사실상의 지배구조개편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차라리 "현대모비스가 개별 기업으로서 수익성이 높은 사업부(A/S)만을 보유하고 모빌리티 투자의  중심으로서 지배구조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그럴싸한 목표가 포장됐더라면 투자자들은 안심했을지 모른다.

      현물출자, 물적분할 논의를 차치하고 명확한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다시 시작된 지배구조개편, 사실상의 핵심 사업부 분할의 절차에서 이사회 결의만으로 속전속결로 결론을 내는 것은 너무나도 일방적인 모양새다.

      사실 정 회장 체재의 재편 이후 현대차그룹의 변화된 모습은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사업 재편이 발빠르게 이뤄졌고 사업의 방향성도 과거에 비해 비교적 명확히 제시했다. 외부의 인재 영입이 활발해졌고, 군대보다 더 엄격하다던 조직 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러나 유독 그룹차원의 거버넌스 변화를 추진할 때마다 나타나는 경직된 모습은 여전해 보인다. 한 차례 대대적인 사업 재편의 실패를 겪었음에도 올해 초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철회 과정에서도 소통의 부재가 실패의 원인으로 꼽혔다. 물론 주식 시장의 급격한 상황 변화도 원인이었겠지만 이 같은 상황에도 정 회장의 지분을 비롯한 75%의 지분을 구주 매출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패인이었다.

      정의선 회장(당시 부회장)은 2018년 지배구조개편방안을 철회하며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하겠다"고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모르는, 그러나 계획돼 있는 이번 사업 재편안은 '여러 주주들'과 '시장'과 소통한 방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