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낭떠러지' 성적표 받아든 증권사 인수금융…"호시절 끝났다"
입력 2022.10.07 07:00
    3분기 증권사 전반 인수금융 주관 실적 '1건 또는 0건'
    걱정보다 빨리 고꾸라진 성적표…거래절벽 탓도 있지만
    '총액인수' 앞세운 증권사 인수금융 전성기 끝났단 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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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3분기 내내 인수금융 재매각 부담으로 몸살을 앓던 증권사가 낭떠러지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이후로 수년간 이어진 증권사 인수금융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국내 M&A 인수금융 주관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3분기 2건 이상의 실적을 올린 증권사는 KB증권과 삼성증권, 단 두 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리그테이블 상위권을 다퉈오던 대형 증권사 전반이 1건 또는 0건의 성적표를 내놨다는 얘기다. 상반기 순위가 그대로 연말 성적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진 우려는 지난 2분기부터 새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급격하게 고꾸라질 줄은 몰랐다는 당혹감이 전해진다. 당초 시장에선 2분기까지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던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연말까지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투자증권은 3분기 1000억원 미만, 한 건의 주관 실적을 올리는데 그쳤다. 

      현재 그나마 이전 수준의 영업을 이어가는 증권사는 KB증권이 유일하다. KB증권은 3분기 기준 약 9000억원 가까운 주관 실적을 달성했다. 상반기 1위 경쟁을 벌이던 양사가 불과 두세 달여 만에 극과 극의 상황에 놓인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 절벽은 지난 2분기 금리 인상 우려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신규 인수금융이나 자본재구조화(리캡)이 몰린 기저효과 탓도 있다"라며 "6월 초 PEF(사모펀드) 운용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리캡 건이 아직 재매각 시장을 전전하는 사례도 전해진다. 당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영업에 나섰다가 후폭풍을 마주할 증권사가 생길 것으로 봤지만, 다들 이렇게 쉬게 될 줄은 몰랐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3분기 들어 자본시장 전반이 거래 절벽을 마주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상반기 중 주요 출자자(LP)들이 지갑을 닫으며 운용사 전반이 개점휴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시장이 아직 바닥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보고 현재 보유한 미소진 자금으로 수년을 버텨야 할 거란 불안감도 높다. 결과적으로 3분기 인수금융 시장 역시 쉬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증권사 내부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인수금융 영업을 이어가기 힘든 구간에 도달했다는 진단도 나오는 모습이다.  

      증권사 기업금융본부 한 임원급 인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금리는 지속해서 우하향했고, 국내 자본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면서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 마련됐었다"라며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증권사 인수금융 부서가 너무 쉽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동안 여의도 증권가에선 인수금융처럼 좋은 사업을 왜 안 하느냐는 말까지 있었는데, 실력 덕이 아니라 시장의 우호적 환경 때문이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시중에 풀린 유동성 덕에 많은 거래를 수임하며 쏠쏠한 수익을 올린 것은 증권사 내 인수금융 부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공개(IPO) 중심의 주식자본시장(ECM) 부서나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 등 시중에 풀린 돈에 올라탈 수 있는 대부분 부서가 실력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자조적 분위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 역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 인수금융의 경우 정부 당국에서 물꼬를 터주며 은행 중심의 시장이 지난 몇년 동안 증권사 중심으로 재편된 격전지로 통한다. 지난 2017년 금융위원회가 처음 종합금융투자사업자(초대형 IB)를 발표할 때 유일하게 발행어음 사업을 인가받으며 부상한 한국투자증권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PEF 운용사의 핫플레이스로 통했다.

      초대형 IB 출범 이듬해인 2018년부터 국내 인수금융 리그테이블 상위 4개사는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인가를 받은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이 자리하게 됐다. 증권사 간 주선 경쟁이 치열해지며 은행은 쉬이 할 수 없는 총액인수를 앞세운 영업 전략이 부상했다. 태생적 한계로 거론되던 '자금 동원력'에서 경쟁 금융사를 압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덕이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가 단독으로 투자확약서(LOC)를 끊어주며 주관사 지위를 확보하고 빠른 시간 안에 재매각을 마쳐 다음 영업에 나서는 것은 물론 파생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주선 실적도 쌓고 수수료도 챙기며 네트워크까지 확보할 수 있는 효자였던 셈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인수금융에 적극적이지 않던 몇몇 증권사 내에서 총액인수를 통해 주선 실적을 쌓아보자는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불과 수개월 만에 그런 전략 자체가 빛이 바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 투자금융부 한 실무급 인사는 "우선 조달 금리가 너무 뛰었기 때문에 총액인수에 나설 여력이 없고, 보유 채권자산에서 조 단위 손실이 거듭되니 한도 이슈가 없어도 함부로 북(book)을 채우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라며 "신규 인수금융을 취급할 시간이 있으면 재매각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금리가 더 올라갈 예정이니 총액인수는 불가하고, 이는 구태여 증권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권사 인수금융 전쟁에서 선제적으로 종적을 감춘 미래에셋증권의 행보도 재조명된다. 미래에셋은 2020년까지만 해도 인수금융은 PEF 보유 포트폴리오의 리파이낸싱 거래에 집중하며 연간 기준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1년 들어 신중 모드에 들어서며 상위권을 내줬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재매각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 마련됐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과 경쟁하던 대형 증권사들 중에선 지난해 인수한 자산의 재매각도 마치지 못해 사실상 물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며 "그러다 보니 순위권에서 밀려난 미래에셋증권이 앞을 내다보고 그런 전략을 펼친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무척 영리한 전략이 됐다는 관전평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SK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사례처럼 기관의 목표 수익률 부담으로 고금리 인수금융을 활용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언제 개선될지 확신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몇 bp(1bp=0.01%)라도 싼 인수금융을 활용하기 위해 이미 은행 투자금융부서를 찾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시중은행과 함께 영업에 나설 수 없는 독립계 증권사의 경우 인수금융 담당 부서가 통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거래를 물어오고, 대주단을 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뒤안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