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안 졸업한 두산그룹과 접촉 늘려 일감 확보하려는 중소형 증권사들
입력 2022.10.11 07:00
    두산그룹과 전보다 접촉 늘리는 중소형證 RM들
    자금 수요에 대응해 향후 먹거리 확보 기회 마련
    리테일 수요는 많지만 기관들은 반응 미지근
    고민에 빠진 대형사, 비우량 등급 여전히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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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소형 증권사들이 올초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자금 조달에 나선 두산그룹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들은 최근 시장성 조달을 늘리고 있는데, 구조조정 기간 동안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이하 전단채) 등 단기물 위주로 발행하던 것에서 탈피,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 구조를 장기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자금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선제적으로 관계를 형성해 향후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비우량등급인 두산그룹에 대한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대형 증권사들 역시 미매각 부담에 쉽사리 두산그룹과 접촉이나 영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행된 두산에너빌리티의 공모채도 기관이 아닌, '절대금리'(채권 보유에 따른 이자수익)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증권사 리테일의 수요 덕에 완판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2월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졸업한 두산그룹은 다시 자본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강등된 두산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올해 다시 회복되면서다. 1년 9개월 만에 BBB-에서 BBB0으로 신용등급이 한 노치(Notch) 상향된 두산에너빌리티(前 두산중공업)는 회사채 무보증 2년물(BBB0) 발행에 나선 상태다. 

      증권업계는 두산그룹의 자금조달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구조조정을 거치며 주력사업을 매각한 ㈜두산과 두산에너빌리티가 대표적이다. 또 채권단 관리 체제 하에서 단기물 위주로 발행해온 두산그룹 계열사들이 이를 장기물로 차환해 상환 부담을 줄이려는 의지도 있다고 전해진다. 지주회사인 ㈜두산이 단기물인 CP 발행 의존도를 높여온 바 있다. 

      다만 두산그룹에 대한 기관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그간 두산그룹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원 없이는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등 미매각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두산그룹의 자본시장 등장 소식에 기관들 사이에선 "두산그룹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정도로 안정적인 기업이 된 것인가", "구조화 끝판왕 두산그룹이 어떤 악재에 또 직면할지 모른다", "단언컨대, 두산그룹 계열사에 투자할 수 없는 기관은 없다. 신용등급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와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금번 발행한 회사채의 완판 소식도 투자 기준을 절대금리로 잡는 증권사 리테일 수요가 컸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 공모채 수요예측에 나선 SK리츠가 미매각 나면서 상대적으로 잘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라며 "항상 미매각난 기업이 오버부킹 된 것을 두고 '회사채를 조달할 정도로 안정적인 기업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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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분위기에도 중소형 증권사들은 두산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 IBK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에 속한 RM(Relationship Manager)들이 두산그룹과의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그간 각 증권사별로 두산그룹 담당자를 두곤 있었지만 과거보다 접촉이 더욱 잦아진 상황이란 설명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두산그룹의 신용등급이 낮았던 까닭에 증권사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했다"라며 "신용등급이 한 단계 회복됐으니 한층 자금조달이 수월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추가 악재가 없을 것이란 기대감과 계열사들의 자금 수요 및 상장 기대감 등이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으로 꼽힌다.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가 추가로 더 악화될 리 없다는 기대감이 거론된다. 채권단 관리 체제 돌입을 촉발한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 두산건설이 매각된 점이 거론된다. 그간 두산에너빌리티는 실적변동성이 높고 영업자본 및 금융비용 부담이 큰 두산건설에 오랜 기간 자금을 지원한 데 대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재무적 부담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 등 상장 가능성이 있는 계열사를 보유 중이다. 증권사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자금이 필요한 ㈜두산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향후 계열사 상장 주관 확보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리스크 관리에 철저한 대형 증권사들은 쉬이 비우량 등급인 두산그룹의 자금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관들의 투심이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미매각 물량을 자기자본으로 떠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현재로선 증권사 리테일이 두산그룹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있더라도, 향후 상환 요구가 있을 경우 이에 적극 대응해야할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채권시장 부진 속 먹거리 확보는 이들에게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최근 우량등급을 보유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회사채 차환 발행이 줄고 있다. 직전 발행 대비 조달비용이 과도하다고 판단, 회사채를 차환하기보단 현금으로 상환하는 안을 택하면서다. 이들은 내년 1~2월을 회사채 신규발행 시기로 보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채권 시장에 어려운 만큼 먹거리 걱정이 큰 대형 증권사들은 고민이 없지 않을 것"이라며 "우량등급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외면받는 중소형 증권사들은 리스크 측면에서 대형사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영업에 열을 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