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의 천국' 이었는데…'투명성 강화' 옥죄는 美 규제당국
입력 2022.10.17 07:00
    美 SEC, PEF 깜깜이 운영 제동…정보 제공 의무화 추진
    토이저러스 등 PEF 투자한 소매업 잇단 파산이 기폭제
    '과중한 부채 넘겨 기업과 일자리 날렸다' 비판 목소리
    美 기관은 정부 제안 수용 기류…한국에 미칠 영향 주목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은 사모펀드(PEF)의 발상지이자 천국으로 불리는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올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PEF의 깜깜이 운용에 칼을 빼들며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PEF 업계는 규제 가능성에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국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규제 강화 기조는 이어지고 PEF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지난 2월 미국 SEC는 사모·헤지펀드의 정보 공개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투자 정보 자료 제공을 의무화하고, 이해 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제안을 통과시켰다. 

      제안에 따르면 PEF와 헤지펀드는 투자자에게 분기마다 펀드 성과와 수수료, 비용, 보수 등의 세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공해야 한다. SEC가 자산평가 추정치를 점검할 수 있도록 매년 감시도 받아야한다. 운용역들의 수수료 수입 파악 목적이다. PEF들은 공익에 반하거나, 고객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위도 해서는 안된다. 수익과 관련 없는 각종 비용을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펀드가 소송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할 방침이다. 

      SEC는 제안에 대해 6월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으나 아직 최종안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민주당이 안건 통과를 주도했는데, 막강한 로비력이 있는 대형 PEF들과 공화당에선 이에 거세게 반대하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전에도 PEF, 헤지펀드 등 사모투자 시장(Private market) 종사자들의 수입에 어떤 세율을 적용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민주당은 PEF 파트너들은 성과보수(carried interest)가 핵심 수입이니 소득세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했고, 공화당은 이에 반대해 왔다. 미국 과세당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성과보수는 ‘자본 수입(capital gain)’으로 분류돼 최대 20%의 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소득세율은 거의 40%에 육박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첫 SEC 위원장인 게리 겐슬러는 초기부터 사모투자 시장 규제 강화에 적극성을 보였다. 2월 제안에 대해서도 “18조달러 넘는 자산을 보유한 펀드들의 중요성이 커진 것을 반영했다”며 “사모·헤지펀드 투자자에는 수많은 미국인과 관계있는 연기금이 있어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6월 미국 연기금 및 기타 기관투자자들은 PEF와 헤지펀드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를 강화하기로 하는 연방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PEF 업계에선 새로운 규제가 불필요하고, 이는 투자자의 수익에도 부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업계 스스로 규제 강화에 얼마나 대응할 준비돼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미국 내에서 PEF를 향한 시각이 싸늘해진 시발점은 소매업 포트폴리오의 연쇄 파산이다. 2017년부터 대형 소매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는데, 상당수 기업이 바이아웃(buyout) 전문 PEF가 투자한 곳이다. 특히 2017년 미국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 청산이었던 ‘토이저러스(Toys "Я" Us)’ 파산은 PEF의 가장 뼈아픈 실패 사례로 꼽힌다. 

      KKR과 베인캐피탈파트너, 미국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보네이도리얼리티트러스트는 2005년 토이저러스를 66억달러에 차입매수(LBO)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토이저러스는 이후 매년 5억달러에 달하는 이자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사업 경쟁력은 악화했다. 회사는 모든 매장을 폐점한 2018년까지도 50억달러 이상의 부채로 고전했다. 시장에선 'PEF가 부채를 늘려 사업자를 망하게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외에도 Shopko(할인 소매 체인점), Claire’s(액세서리 체인), Payless ShoeSource(신발 할인매장), Nine West(신발 매장), Gymboree(영유아 놀이교육), Staples(문구 소매점), A&P(슈퍼마켓체인) 등 미국 소매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이 기업들의 이전 소유주도 PEF였다. 2016년 블랙스톤이 인수한 뉴욕시의 슈퍼마켓 체인 ‘페어웨이(Fairway)’는 2020년 파산 신청을 했다. 이전부터 실적이 악화하던 추세긴 했지만, 당시 "살자고 찾은 투자자가 회사를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있었다.

      익숙한 가게들이 문을 닫고 수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PEF를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2019년부터 민주당 내에서 엘리자베스 워런을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PEF 산업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미국 당국이 규제 강화 기조를 고수하는 만큼, PEF 운용사들의 향후 행보에도 제약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 PEF 시장의 변화는 시간 차를 두고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정치권과 규제 당국이 미국 규제 강화 움직임을 따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