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 발길도 끊긴 여전채…'최후의 보루' 된 채안펀드
입력 2022.11.16 07:00
    고금리·짧은 만기 앞세워 리테일 인기 얻은 여전채
    여전사 유동성 우려·전반적 금리 상승에 '인기 뚝'
    "고금리 쫓던 개인들, 국채·AAA급 은행채만 찾아"
    본격 가동되는 '제2 채안펀드' 효과 지켜봐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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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카드사·캐피털사 등이 발행하는 여전채(여신전문금융회사채)가 리테일에서도 외면을 받고 있다. 불과 한두 달 전에는 여전채가 고금리를 앞세워 개인 투심을 이끌기도 했지만, 최근 채권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며 개인들도 ‘금리 매력’ 보다는 ‘안정성’을 찾는 분위기다. 기관과 개인 모두가 떠난 가운데 여전채 시장의 상황 개선은 ‘제 2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등 정부의 지원사격 효과에 좌우될 전망이다.

      11일 하나증권은 '2023년 채권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캐피탈사의 유동성 지표 등은 절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금리 상승에 따른 펀더멘털 저하 우려, 부동산 금융 부문의 잠재적 우려, 정부 정책 지원 종료 이후의 차주 건전성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여전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펀드 손실에 따른 환매 요청에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좋은 여전채 투매, 증권사 파생결합 증권의 발행 축소에 따른 헤지 자산으로의 여전채 수요가 감소하면서 수급적으로도 불리한 이슈가 산재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채권시장에서 여전채 조달 환경은 악화하고 있다. 채권 시장의 ‘돈맥경화’ 상황이 심화하면서 AA급 우량 대기업도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고, 유동성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여전사들을 향한 투심도 떨어졌다. 금리는 치솟았다. 최근 여전채 AA+의 3년물 금리는 6%대를 넘어섰다. 올해 1월의 2%대  초중반 금리와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카드사들은 유동성을 둘러싼 불안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현금 보유량을 늘리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은행처럼 자체 수신 기능이 없어 영업에 필요한 자금의 60~70%를 여전채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는 경우 자금조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 그나마 얼마 전까지는 채권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른 개인 투자자들이 일부 여전채 공급을 흡수해왔다. 발행사들도 애초에 리테일 수요를 염두에 두고 만기가 짧고 금리가 높은 채권들로 조달 계획을 세웠다. 

      개인 투자자의 채권 투자 ‘붐’이 시작된 지난 8월 전후부터 여전채 단기물에 리테일 투심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가파른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서 만기가 2년 이내인 여전채가 강세를 보였다. AA급 여전채를 월 이자 지급식(월 이표채) 상품으로 내놔 인기를 끌기도 했다. 리테일에서 여전채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관 투자자들까지 여전채 매수를 추종하는 분위기가 나타난 바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개인은 4조8000억원어치의 여전채를 사들였다. 국채·회사채 등을 포함해 개인이 사들인 전체 채권 순매수액(16조7000억원)의 28%를 차지하는 수치다. 

      그러나 최근 리테일에서 여전채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여전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리테일에서도 여전채가 잘 나가지 않는다”며 “원래 여전채가 동일 등급에서 금리가 조금이라도 높아 수요가 있었지만 이젠 전반 금리가 올라 굳이 고객들이 찾을 유인이 없어졌다. 산은캐피탈, 금융지주 산하 캐피탈사나 카드사 등 ‘믿을 곳’이 있는 여전채만 판매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채가 많은 월 이자 지급식도 인기가 뚝 떨어졌는데, 시중은행의 우량 회사채도 많이 나오고 있어 특색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리테일에서 여전채가 외면받게 된 데에는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트렌드가 빠르게 변한 점이 크다. ‘금리 매력’을 가장 중요하게 보던 개인 투자자들도 금리보다 ‘안정성’을 찾고 있다. 불안심리가 높아지면서 리스크(위험) 인식이 높아진 탓이다.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 인상이 이어지기 전인 9~10월엔 개인 채권 투자 규모가 정점을 찍었지만, 이번달 들어서는 그 규모와 속도가 다소 줄어들었다. AAA급의 은행채, 한국전력채권 등도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그나마 금융지주 산하 캐피탈사들은 고금리를 제시해 간신히 투심을 잡는 분위기다. 이달 초 KB캐피탈이 500억원 채권을 발행하는데 연 7.68% 금리를 제시했고, BNK캐피탈·우리금융캐피탈 등도 지난달 7%대의 금리를 내걸었다.

      통상 AA급 이상 우량 회사채가 리테일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지만 지금은 발길이 끊겼다. 대신 국고채, 은행채 등 높은 안정성을 보이는 상품들이 주로 판매가 되고 있다. 11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4.03% 수준으로, 안정성이 높은 국채의 금리가 많이 오른 점이 크다. 최근 한 대형 증권사에서는 리테일에서 하루만에 600억원 규모의 채권이 판매됐는데, 대부분이 국채였다고 전해진다.  

      한동안 여전채 시장은 시장 자체의 수요보다는 정부의 지원 효과에 힘입은 시장 안정 여부를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정부가 채안펀드를 본격 가동하고 매입 규모를 확대하기로 해 얼어붙은 여전채 시장이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란 기대가 오르고 있다. 11일 금융당국은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제 2 채안펀드’ 규모를 45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정부가 한전채와 은행채 발행 축소를 유도하고 있는 점도 여전채 투자 수요가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시중은행들도 채권시장 자금 경색 해소를 위해 지난달 16조7천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여전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