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 실적 꺾이자 위기감 높아진 판교 오피스 시장
입력 2022.11.25 07:00
    2012년부터 IT기업 몰린 판교 오피스 시장
    업황 악화에 판교 입주 기업 실적 하락 가시화
    임대료 삭감 요구나 체납 발생 가능성도
    코로나 사태 이후 IT기업 근무형태 다양화
    재택근무 수요 늘자 공실률 걱정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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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보기술(IT) 업황은 꺾이기 시작했고 게임사를 비롯한 주요 IT 기업들의 실적 하락은 올해 3분기부터 본격화했다. 해당 기업들을 임차인으로 이름을 올린 판교 지역 오피스 시장을 둘러싼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IT기업들을 중심으로 도입이 시작한 '재택근무' 형태도 이같은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IT기업 내 개발자 직군을 중심으로 효율성을 근거로 재택근무 본격 도입을 요구가 많아졌고, 이에 따라 임대 오피스 면적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착공한 판교테크노밸리는 2012년부터 IT기업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IT 업계 중심 지구'가 됐다. 2012년 위메이드(당시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2014년 넥슨, 엔씨소프트, NHN엔터테인먼트(당시 한게임) 등이 판교로 둥지를 옮겼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인 존스랑라살(JLL)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판교 오피스 임차인 중 ICT 관련 기업의 비중은 90.1%에 달한다.

      판교행을 택한 기업들은 ▲서울 중심부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 ▲비용 대비 높은 강남 접근성 ▲ 편리한 교통 등을 입주의 이유로 꼽는다. 이 같은 이유로 주로 강남지역에 사옥을 두고 있던 IT 기업들이 판교행을 택했다. 올해엔 네이버와 카카오가 판교역 부근의 '알파돔시티'에 나란히 입주했다. 뿐만 아니라 강남지역에 포진해있는 VC 하우스들과의 접촉점을 넓히기 위해 판교 오피스에 입주한 스타트업도 다수다.

      승승장구하던 판교 입점 기업들의 실적 하락세는 올해 들어 본격화했다.

      엔씨소프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회사들이 다소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NHN과 크래프톤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동안 각각 70%, 28%씩 감소했다. 위메이드는 3분기 적자전환을 했다. 판교의 대표적인 바이오 기업인 SK바이오팜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3분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 부동산 관련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판교 부동산 시장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오피스는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늦게 반응하는 편이라 괜찮다. 그렇지만 IT 업종의 비중이 높은 판교는 걱정이 된다. 주요 IT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 판교 부동산 시장도 침체의 영향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A 공제회 부동산 투자팀 소속 관계자)

      "스타트업 임차인을 보유한 공유 오피스 업체들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비슷한 컨셉으로 임차인을 채운 판교테크노밸리도 비슷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아직 임대차 계약기간도 남아있고 입주한 기업들도 보증금이 있으니 당장은 괜찮아 보일 순 있지만 업황이 더 꺾이면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B 증권사 부동산PF부 관계자)

      물론 메이저 유통기업들이 판교를 프랜차이즈 점포 개발 타깃 1순위로 삼고 있는 등 임대 수요가 꾸준한 상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상암 등 비선호 지역에 입주한 기업들이 판교로 둥지를 옮기려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다. 다만 경기 불황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을 고려하면 상황은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일단 임차한 기업의 실적이 꺾이면 임대료 삭감 요구나 체납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당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크게 줄면서 매출이 급감한 CJ CGV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활용해 건물소유주를 대상으로 한 임대료 인하 요구를 거절당한 데 '차임감액청구권'을 행사, 법원에 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IT기업들을 중심으로 퍼진 '재택근무 활성화' 분위기도 판교 오피스 시장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재택근무 제도가 도입된 이래, 기업과 임직원들이 해당 근무형태의 효율성을 인지하며 사무실 출퇴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통상 IT기업은 백오피스 인력보다 개발자가 중심이 되는 편인데, 특히 업무상 공간제약이 덜한 개발자들의 재택 본격 도입 관련 요청이 많아졌다고 전해진다. 판교 부동산 상당수가 공실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평가다.

      국내 증권사 한 임원급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의 특이한 요구사항 중 하나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며 "요즘은 재택 뿐만 아니라 레지던스 호텔을 장기임대해서 쉬면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기업도 있는 등 오피스 임대의 필요성이 줄고 있는데 이것이 IT 기업들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