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담보 쥔 산업은행의 딜레마…조원태 회장 상속세 외면하자니 호반이 걱정
입력 2022.12.06 07:00
    조원태 회장, 2019년 조양호 회장 별세로 수백억 상속세
    한진칼 지분 뿐인데, 2020년 후 산업은행에 담보권 설정
    지분 처분하려면 산업은행 동의 필요하지만 결정 어려워
    과세당국이 조 회장 지분 처분하면 2대주주 호반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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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한진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8000억원을 한진칼에 투입했고, 7대 의무조항을 부여했다. 조원태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 전체도 담보로 잡아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당시 조원태 회장과 산업은행 모두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은 경영난을 겪는 아시아나항공을 맡길 곳이 필요했고, KCGI로부터 경영권 도전을 받던 조 회장은 산업은행의 도움을 받아 한숨을 돌리게 됐다.

      투자합의서 체결 2년이 지났지만 산업은행과 조원태 회장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은 모습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2년이 되도록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다. 조원태 회장은 산업은행과 델타항공 등 지원을 업었지만 아직 입지가 공고하지 않다.

      조원태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상속세다. 조 회장은 2019년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후 한진칼 주식을 다른 유족들과 나눠서 물려받았다. 당시 유족들이 신고한 상속세액은 2700억원가량이고 조 회장이 부담해야 할 몫은 600억원 수준이었다. 상속세는 6회에 걸쳐 연부연납하기로 했으니 한번에 1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조원태 회장에게는 상속세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자금을 융통할 개인 회사가 없었던 데다, 그룹이 여러 해 동안 재무압박에 시달리며 보수나 성과급을 많이 챙기기도 어려웠다. 자택 외에는 별다른 축재를 해 둔 것이 없어 세금을 내기 쉽지 않다. 세금을 내기 위해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3.28~5.2% 금리로 540억원의 주식담보 대출을 일으킨 상태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다. 조원태 회장은 작년 한진칼과 대한항공에서 34억원의 보수를 챙겼는데, 소득세율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걸로는 현재 주식담보 대출의 이자 정도만 부담할 수 있다. 과거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 회장과 대립각을 세운 것도 상속세 부담이 한 영향이었을 것이란 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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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회장 입장에선 앞으로 돌아올 세금을 내기 위해선 한진칼 지분 담보로 추가 차입을 하거나, 일부 자금을 시장에 파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 보유지분(5.78%) 중 1%를 판다면 세금을 제하고도 1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문제는 조원태 회장이 주식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주식 전량에 대해 담보권을 설정해 뒀다. 금융사에 담보로 맡겨둔 주식은 돈을 갚고 담보권이 해제되더라도 산업은행에 근질권을 설정해야 한다. 종로세무서와 반포세무서에 연부연납 담보로 묶인 주식 또한 담보권 해제 시 산업은행에 근질권을 설정할 의무가 있다.

      상황이 이러니 조 회장 측은 산업은행에 한진칼 주식 일부를 팔 수 있도록 담보권 해제에 대한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요청을 수긍하기도 반려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한진그룹은 오너의 일이라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 지분을 담보로 잡은 것은 투자합의를 이행할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합의 위반 시 손해배상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경영 책임이 있는 대주주 일가를 견제하기 위해 담보를 설정했는데, 이제 와서 풀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담보를 쥐고만 있는 것이 상수일지도 의문이다. 조 회장이 상속세를 내지 못하면 과세당국이 납세의무자의 재산을 공매로 처분할 수도 있다. 현재 세무서에 담보로 묶인 주식만 2%에 가깝다. 이 지분 등이 매각된다면 조 회장 일가의 지배력은 더 취약해진다.

      지금이야 조 회장의 우군으로 보이는 세력이 적지 않지만 지분율이 호반건설(16.58%)에도 밀린다면 입지가 모호해진다. 호반건설은 올해 초 한진칼 지분을 적극 매입해 2대주주에 올라 있다.

      정부는 항공업 운영 경험이 없는 주체의 부상을 원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태 회장이 미덥건 그렇지 않건 택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조 회장 역시 산업은행의 눈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다보니 해외 기업결합 승인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산업은행에 담보를 풀어달라고 하지만 산업은행 입장에선 이를 선뜻 받아들기 어렵다”며 “다만 가만히 있다가 과세당국이 주식을 가져다 팔기라도 하면 유일한 국적항공사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한진칼은 이번 사안에 대해 "현재 지분 매각 계획은 전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