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發 '잔혹사' 본격화…위기 경험 못해본 금융사들 걱정 한가득
입력 2022.12.15 07:00
    금융위기 뇌관된 부동산PF…업종별 자산건전성 추이에 주목
    "위기 겪어본 은행·저축은행은 양호, 캐피탈·중소형證 모니터링"
    과거 위기경험 회의론도…"PF 사업장마다 회수 가능성 달라"
    자산건전성 관리 중요해질 내년…"은행까지 번지면 시스템 망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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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3년에는 국내 금융사들의 '부동산PF 잔혹사'가 본격 전개될 전망이다. 업종별로, 또 대출을 집행한 사업장별로 리스크(위험) 수준은 다르지만 금융권 최후 보루인 '은행업'으로 신용 리스크가 번지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개별 금융사들은 자산건전성 저하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12월 들어 국내외 신용평가사(이하 신평사)들은 '국내 금융업종별 자산건전성 저하 우려 확대'를 주제로 신용리스크 점검 세미나를 진행했다. ▲고금리에 취약한 업종들이 처한 업황 악화 ▲차주들의 대출 상환능력 저하 ▲확대된 부동산PF 익스포저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업종별로 처한 환경은 조금씩 달랐다. 

      은행들은 일단 건전성 관리에는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부동산PF 관련 익스포저가 크긴 하지만, 부동산개발 사업 중 가장 위험한 단계인 '브릿지론' 비중이 크지 않고, 본PF도 대체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순위 대출 위주로 구성돼 있다. 또한 과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산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질적 개선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주 상환능력 저하에 따른 건전성 저하도 어렵지 않게 대응할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김대현 이사는 "한국 은행의 건전성은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한다"라며 "물론 만기연장, 이자유예 등에 따라 리스크가 이연된 측면이 있으나 한국 은행들의 개선된 건전성 관리법, 금리 상승에 따른 순이자마진 확대,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 등을 고려하면 신용등급을 훼손할 정도로 악화되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험업종은 부동산PF 잔액이 가장 가파르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보험업종의 부동산PF 잔액은 9년 만에 5조원대에서 40조원대로 7~8배가량 늘었다. 다만 은행업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순위 대출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된데다 대응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부실 위험이 큰 업종으로는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등이 꼽혔다. 이들 금융사의 경우 부동산PF 익스포저가 브릿지론에 집중돼 있다. 증권사들은 브릿지론 관련 채무보증 익스포저가, 캐피탈사와 저축은행은 브릿지론 관련 우발채무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증권업종은 중소형사들이 큰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신용평가사들은 대형 증권사들은 유동성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잘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용등급 A2인 중소형 증권사들이 지급보증한 자산유동화증권 물량을 금융당국과 대형증권사가 나서 매입해주곤 있지만, '적합한가'를 두곤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 운용업계 고위급 관계자는 "인과응보로 보여지는 것이, 공격적으로 부동산PF를 늘린 중소형 증권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마치 금융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위험한 사업장에 투자하는 분위기였고, 이는 풍부한 유동성에 가려졌다"라며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질 역량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이 투자 주체였고, 지금은 부실한 사업장 담당자들이 자리를 옮겨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부동산PF 관련 리스크보단 업황 악화에 따른 수익성 부진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10년 전 저축은행 사태를 겪어내면서 저축은행은 '한 기업이나 사업장에 빌려줄 수 있는 금액은 자기자본의 20%이며, 한 건당 최대 취급 금액은 120억원'이라는 내용의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도 이같은 규제 덕에 저축은행의 부동산PF 관련 리스크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수익성 압박 요인은 산적해있다. 부동산PF 업황이 꺾이면서 신규 대출을 집행하기 어려워졌고 금리 인상기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법정 최고금리가 4%포인트가량 인하되며 저축은행은 더 이상 대출금리를 상향조정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저축은행 대출 상품의 만기는 '1년 이상'으로 긴 편에 속한다. 가파른 금리 상승에 예금 금리는 상승하는 반면, 만기 도래가 아직인 대출상품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가 지속 적용되는 등, 만기구조상 수지가 안 맞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부터 저축은행의 수익성 하방 압력이 가시화할 것이며 이는 신용도에 부정적이다"라며 "부동산PF 익스포저가 있는 것 자체도 위험요인으로, 대출 집행 규모가 크진 않지만 부동산 경기가 추가로 침체되면 영향을 안 받을 순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캐피탈사는 9년만에 부동산PF 잔액이 10배 이상 늘었다. 그간 자동차 할부 등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았던 이들은 부동산PF 대출이 대부분인 '기업대출'로 수입원을 다각화 하려 했다. 이들은 올해 중순부터 신규 대출 집행을 중지하고 회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상황은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통상 시공사로 하여금 예정된 공사기간 내 건축물을 준공하도록 하는 '책임준공의무'를 지우는데,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무하다시피 했던 책임준공 시기 이연 요구를 지난 몇개월 사이 다수 받고 있는 실정이다.

      리스크 감시 주체인 금감원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부동산PF 관련 자료를 지속 요청하는 등 유동성 관련 잠재 리스크를 파악 중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부동산PF 익스포저가 있는 금융사들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자산 매각, 계열사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당장의 유동성 위기에 대응할 계획이 있는 발행사들은 신용평가사들에 적극 설명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상반기부터 자산건전성 관련 경고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과거 위기 경험이 없는 중소형 증권사나 캐피탈사 등엔 가혹한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개별 부동산 PF 사업장에 따라 잠재 리스크 요인이 다른 까닭에 위기 경험만을 가지고 자산건전성 추이를 단언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2023년에는 금융업권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은행'으로 신용위험이 번지지 않도록 개별 계열사들이 자산건전성 위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을 평가할 때, 부동산PF 사업장마다 특성이 다른 까닭에 회수 가능성에 대한 느낌도 모두 달랐다"며 "과거에 금융사들이 겪었던 자산건전성 위기는 시공사가 위험의 주체였지만 최근에 대두된 위기는 금융기관에 그 위기가 분산된 양상이어서 다소 다르다. 과거 위기의 주체였다는 이유로 산업 전체에 일괄적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전망하기 어려운 이유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측은 대형 금융지주 산하 계열사들의 자산건전성은 계열지원 등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관리될 것이란 입장이다. 은행은 아직까진 기본적인 재무안정성이 지지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마저도 신용위험 확대가 심화돼 자산건전성 저하를 방어하지 못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우려는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