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확실성'에 가렸던 승계 이슈… 2023년 주목받을 대기업들은?
입력 2022.12.15 07:00|수정 2022.12.15 11:50
    승계 가속화한 한화, 경영 숙제 많은 롯데그룹
    삼성·현대차, 해묵은 지배구조 개편 숙제 여전
    CJ그룹은 올해 미룬 CJ올리브영 상장이 과제로
    '물려받을 자녀 없다'…승계 트렌드 변화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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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대기업들은 초유의 경영 위기 상황에 놓였다. 기업들이 ‘생존’에 집중하면서 승계 이슈는 다소 시장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었다. 내년에는 30~40대 오너들이 발빠르게 움직인 곳이든, 아직 숙제를 풀지 못한 곳이든 다시 승계 고민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경제침체 우려 등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이들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있다. 각종 환경이 ‘대물림’을 하기 어렵게 변하고 있다는 점은 모든 기업들의 고민이다.

      한화그룹은 올해 주요 대기업 중에선 가장 승계 작업에 속도를 냈다. 지난 8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부회장으로, 10월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전무로 각각 승진했다. 김 부회장은 김 회장을 대신해 대외활동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한화 전략 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 부문 대표이사도 겸직하며 핵심 미래사업인 ‘그린에너지’, ‘우주항공사업’ 육성 중책을 맡았다.

      올해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김동관 부회장에 방위산업(방산)이라는 날개를 달아줬고 계열사 사명을 ‘신사업’ 색채가 담긴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사명에 오너 의지가 담긴 미래 비전이나 신사업 키워드 강조되는 점을 고려하면 김동관 부회장 체제 아래 새로운 그룹 정체성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정기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롯데는 올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기초소재 영업과 신사업을 담당하는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보)의 인사가 주목된다. 1986년생인 신 상무는 올해 신 회장과 함께 베트남으로 동반 출장길에 나서는 등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롯데가 승계에 속도를 낸다면 1년여 만에 또 승진시킬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잡음 없는 승계를 뒷받침할 대내외 여건은 좋지 않은 편이다. 신유열 상무가 소속된 롯데케미칼은 실적 부진과 재무 부담 관리 이슈가 있고 그룹 차원에서는 롯데건설의 유동성 문제가 급선무다. 신 상무는 현재 한국과 일본 롯데 관련 지분이 없어 후계자로서 경영 능력 입증이 필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 제일제당 경영 리더는 10월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승진했다. 2022년 인사에서 경영 리더로 승진한 후 올해도 승진한 이 경영 리더는 글로벌 M&A(인수합병) 등 글로벌 식품사업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는 승계 재원 마련의 핵심인 CJ 올리브영 상장이 내년 이후 중요 과제다. 정기 인사에서 40대 여성 임원인 이선정 영업본부장이 대표로 승진했는데 내년 성공적인 상장을 최우선 과제로 부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H&B(헬스앤뷰티) 시장에서 압도적 1위인 CJ올리브영은 실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마켓컬리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뷰티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점은 변수다.

      삼성과 현대차는 해묵은 과제인 지배구조 개편이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두 그룹 모두 표면적인 승계는 마치고 오너가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배구조는 아직 불안정한 부분이 있다.

      올해 ‘이재용 회장’ 시대를 연 삼성그룹은 지난달 22일 국회가 ‘삼성생명법’ 논의에 재착수하면서 최대의 난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법안이다. 삼성은 이 회장 이후의 승계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2020년 5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삼성이 장기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10월로 회장 취임 2년째를 맞이했지만, 지배구조 개편이 여전히 정체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정 회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핵심이다. 올해 초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칼라일그룹에 처분하면서 지배구조 개편 속도 기대감이 올랐지만 추가 실탄 마련이 예상되던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은 철회했다.

      SK그룹은 최대 변수였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1심이 나왔다. SK㈜ 주식은 재산 분할 대상에서 빠지면서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게 됐다. 자녀들의 미래에 더 관심이 모인다. 최 회장은 노 관장과 함께 1남 2녀를 두고 있고 이들은 각각 다른 SK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아직 차기 승계를 논하기 이르지만 향후 지분이 자녀들에 어떻게 분배될지가 관심사다.

      SK그룹은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를 꾸준히 이야기해왔지만 실질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ESG 경영이 ‘월급 받는’ 계열사 대표들 주도로는 힘들다는 점이 지적된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달 계열사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대대적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 주목받았다. 승계하기에 ‘깔끔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지만 막상 승계 작업은 알려진 바가 없다.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직 자녀들이 경영수업을 받는 등 모습은 드러내지 않다 보니 향후 경영 참여 가능성이 작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녀 승계보다는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앞세대와 다르게 지금의 젊은 재벌가 자제들은 기업 경영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사례도 다수고, 특히 IT 대기업들은 대부분 기업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아 전통 대기업에서도 점점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에서 쌓인 불신이 있기 때문에 승계 작업에 돌입한 기업들로서는 해외 사업이나 미래 먹거리에서 성과를 보여야 승계의 정당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