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덕에 보릿고개 넘긴 DCM 시장…내년도 크레딧 이벤트 있을까 노심초사
입력 2022.12.21 07:00
    올해 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 등 연이은 '크레딧 이벤트'
    비판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관치(?)가 시장 안정화 기여
    내년 금리하락 '희망' 전망에 주관사·발행사 고삐 조이기
    "크레딧 이벤트만 없으면 전반적으로 올해보다 나아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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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국내 회사채 시장은 가파른 금리인상이 이어진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연기 논란 등 ‘크레딧 이벤트’가 연이어 터지며 초유의 유동성 경색을 경험했다. 다만 정부가 대규모 채안펀드 조성, 한전채 은행채 발행 억제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며 연말에는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고 있는 분위기다. 채권 발행사와 주관사, 투자자들은 내년에 ‘예상 못할’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적인’ 관측도 내놓고 있다.  

      10월~11월 국내 채권시장은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했다. 이에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지도와 개입이 이뤄졌고, 비록 '관치' 논란이 벌어졌지만 시장 안정에는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초유의 채권시장 경색에 정부는 10월말 1차 3조원 규모에 이어 2차로 총 5조원 규모의 채안펀드를 가동했다. 동시에 국고채와 한전채 발행 자제와, 한전에 은행 대출 전환을 권고했다. 또다른 시중 자금 블랙홀 역할을 한 은행채도 정부가 금융지주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권고하며 발행량이 크게 줄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개입이)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대응이었던 것 같은데, 채안펀드도 은행 비틀어서 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은행도 채안펀드로 고금리 자산을 많이 사고 있어서 손익에는 도움이 됐다”며 “시장 침체에서 타이밍이 안맞으면 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서 개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손 안대고 코푸는’ 관치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때 수급 불안 때문에 유통시장에서 금리가 6%대 중반 수준으로 올랐던 3년 만기 한전채 금리는 4%대로 내렸다. 채권시장 투자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19일 일부 시중은행들도 두 달만에 은행채 발행을 재개했다. 

      이달 초에는 SK그룹 회사채가 수요예측에 흥행, 공모 회사채도 투심이 회복되고 있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12월 초 SK㈜와 SK텔레콤은 수요예측에서 오버부킹으로 발행에 성공했다. SK텔레콤은 발행 금리도 언더발행(민평금리보다 낮은 수준 발행)을 달성했다. “이달부터는 오히려 채권을 못 구하고 있다”는 일부 투자자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수급 개선을 위한 정책발 ‘훈풍’이 작용했단 점에서 시장 투심 회복을 아직 확정하긴 이르단 평도 있다. SK그룹 회사채 흥행에는 '낙수효과'를 노린 채안펀드, 연기금, 은행 등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채안펀드가 우량채인 SK그룹 회사채보단 PF-ABCP 등 안정이 필요한 부문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SK그룹 회사채는 시중 컨센서스로 민평 +50bp 정도가 예상됐지만 채안펀드 등의 효과로 언더발행했다. 이에 일부 투자자들은 우량 회사채를 좋은 조건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투자자들은 다소 억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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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발행을 못한 기업들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주관사들도 내년 시장 회복을 기대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엔 기업들의 차환 물량에 올해 발행하지 못한 물량까지 더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절대 금리가 높다보니 기존에 계획대로 연초에 발행하기보단, 두 차례 정도 나눠서 발행에 나서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시장 안정 측면에서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금융회사가 무너지는 등의 크레딧 리스크 발생 가능성도 주목된다. 내년 회사채 시장이 올해보다 나아질 확률이 높지만 올해처럼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하면 시장이 또 어떻게 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만 제외하면 이미 금리가 많이 올라있고 크레딧 스프레드도 사상 최대로 확대돼있어 하반기 지나 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희망’이 담긴 전망이 많다. 

      다만 발행기업의 안정성에 따라 시장 투심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같은 등급, 같은 산업(종목) 간에도 차별화가 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하반기 롯데그룹의 자금난을 야기한 주인공인 롯데건설이 내달 만기 1년에 2500억원 규모의 롯데케미칼 보증 회사채를 준비 중이라 관심이 모인다. 이달 26일 수요예측을 거쳐 1월 2일 발행 예정인데, KB·NH·한국투자·신한투자·키움·삼성·미래·하나증권의 대규모 주관사단을 꾸렸다. 금리밴드는 롯데케미칼 개별1년 민평 -80bp~+80bp의 금리조건을 검토 중이다. 한 주관사단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가 단기적으로 좋아져 주관사들의 청약이 흥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도 그룹 내에 식음료 등 관련없는 계열사는 괜찮지만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험에 노출돼 있는 계열사들은 한동안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PF우발채무 등 건설사의 잠재 위험이 어떻게 전이될 지 몰라 시장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관계자는 "대기업들 내년 초에 대규모 발행 많을 것이란 예상이 많은데, 뚜껑 열어봐야 알 것 같다"며 "통상 다들 연초 퇴직연금 자금을 노리고 있지만 막상 금리 변동성이 심해지면 철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커버리지 관계자는 “내년 전체적으론 올해보다 발행이 늘 것으로 보지만, 올해 1월보다는 연초 발행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며 “절대 금리가 워낙 높다보니 기업들이 아직 발행을 결정하지 못한 곳들이 많고, 증권사 등 여전사들도 고민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 지금이 금리 고점이고 내년 하반기엔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서두를 필요 있나’ 고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몰리는 쪽만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