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2인3각' 경기, 서로 눈치봐야 하는 창업자-PEF
입력 2023.02.21 07:00
    창업주는 돈과 경영 명분, PEF는 적은 투자로 노하우 확보
    윈-윈 모델로 각광받았지만 창업주 존재감에 갈등 빚기도
    돈 급한 창업주-거래 궁한 PEF…서로 눈치보며 득실 따질듯
    최근 메디트·오스템 등 거래, 창업주 경영 관여 축소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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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동안 창업자와 사모펀드(PEF)의 공생 모델은 M&A에 있어 모범 사례로 여겨졌다. 창업자는 당장 회사와 절연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목돈을 쥘 수 있고, PEF는 투자 부담은 줄이면서 창업자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부재로 성장에 한계를 보이던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졌고 회수 성과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카버코리아가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6년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ASSG 컨소시엄은 이상록 대표 등으로부터 카버코리아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고, 이듬해 유니레버에 매각했다. 컨소시엄은 1조원대 매각 차익을 거뒀고, 잔여 지분을 함께 판 이상록 대표도 1조 거부 반열에 올랐다.

      과거로 가면 더페이스 사례도 있다. 정운호 창업주는 2005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더페이스샵 지분 70%를 팔았다. 2009년 어피너티가 LG생활건강에 회사 매각할 때 잔여지분 중 일부를 팔아 목돈을 쥐었다. JKL파트너스는 2016년 거흥산업 지분 70%를 인수했는데, 이규석 대표는 지분 30%를 남겨 계속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창업자가 PEF의 출자자(LP)로 나서는 등 재투자 사례도 많아졌다. 단순히 지분 일부를 남기고 공동 매각 약정을 맺어두는 것보다 한 배를 탔다는 목적 의식이 강해지고 성공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블랙스톤은 2019년 지오영 경영권을 1조원가량에 인수했는데, 조선혜 지오영 회장이 지분 매각 대금 일부를 PEF에 출자했다. 고동환 녹수(지배회사 모림) 대표는 2016년 TPG에, 김준일 전 락앤락 회장은 2017년 어피너티에 회사 경영권을 넘기며 재투자에 나섰다. VIG파트너스가 2015년 바디프랜드를 인수할 때는 창업주 일가 강웅철 이사가 핵심 LP로 참여했다.

      창업주와 PEF의 관계가 처음과 달라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투자시장의 열기가 뜨거울 때는 PEF와 창업주의 생각이 다소 달라도 별 문제 없이 회수로 이어진다. 그러나 회사의 실적이 꺾이거나 장이 좋지 않으면 서로 책임 공방을 하게 되고 작은 이견이 큰 틈으로 벌어질 수 있다. 경영권을 가진 PEF는 과도한 간섭에 피로감을 느끼고, 창업주는 PEF의 경영 방식에 불만을 갖게 된다.

      IMM PE는 2020년 하나투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한동안 기존 대주주 박상환 회장과 회사를 공동 경영하는 구도를 이어갔는데 협력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엔 야놀자에 지분을 매각하려 했으나 두 주체간 가격차 등 문제로 인해 성사되지 않았다.

      창업주에 대한 사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잠재 위험도 크다. 창업주가 정치 게이트에 연루되거나, 각종 범죄 혐의나 전횡으로 구설에 오르면 회사의 신인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PEF는 처음 몇 년 간은 창업주에 이사 자리와 고문료 등을 보장하다가도 금세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최대 LP인 경우엔 축출하기도 어려워 PEF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몇해 전부터는 경영권 혹은 소수지분 매각 및 증자 등 ‘열린 M&A 시도’가 많았는데, 창업주와 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방식이라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 PEF 임원은 “PEF가 회사 경영권을 인수했더라도 창업주가 남아 있으면 기존 직원들은 다 창업주 눈치를 보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PEF와 창업주가 ‘2인 3각’ 경기를 해야 하는데 유의미한 지분을 가진 창업주가 대주주처럼 움직이면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과거엔 PEF와 창업자의 ‘공생’ 효과가 먼저 부각됐다면, 앞으로는 득실관계를 더 면밀히 따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PEF는 침체된 시장에서 거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업주는 유동성이 부족한 분위기에서 돈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다.

      VIG파트너스는 작년 바디프랜드를 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기존에는 창업주 일가가 PEF의 핵심 LP로 회사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컨소시엄이 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2대주주이기도 한 창업주를 견제할 장치가 마련됐다. 각계에 영향력이 큰 투자자가 새로 들어오면서 창업주 일가의 발언권이 크게 약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부터 창업주의 역할을 확실히 정립하고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는 바이아웃(경영권거래)을 주력으로 하는데, 창업주도 지분 20~40%를 계속 갖고 가는 ‘파트너십’ 거래가 대부분이다. 기존 오너가 ‘사업적 협력’을 하지만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막아둔다. 처음부터 권한과 역할을 나눠 두니 잡음이 일지 않고, 사업 목표를 계획대로 이행할 수 있다. UCK는 최근 메디트를 MBK파트너스에 팔았는데, 메디트 창업주와 특수관계인들은 이번에 회수한 자금을 재투자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가 지분 70%, 창업주 측이 30%를 각각 갖는다.

      UCK-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의 오스템임플란트 인수 거래도 메디트와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규옥 회장은 보유 지분 절반가량을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2대주주로 남는다. 컨소시엄은 기존 대주주 편에 서는 한편 후한 프리미엄을 얹어 공개매수를 추진하고 있다. 최규옥 회장은 일부 이사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PEF와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컨소시엄이 이사 중 과반을 지명하게 되기 때문에 최 회장이 활동에 깊숙하게 관여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창업주 입장에선 지금처럼 시장이 어려울 때는 PEF의 자금이 아쉬울 수밖고, 거래를 발굴하기 쉽지 않은 PEF로선 창업주의 매각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로 사고 팔면 좋은 상황이니 재투자부터 공동 경영, 추가 회수 등 다양한 거래 조건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