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여론 악화' 사면초가 몰린 통신사
입력 2023.02.21 07:00
    요금 규제 우려 등으로 SKT 52주 신저가
    尹대통령 질타 이후 통신주 연일 하락세
    '거짓해명'한 LGU+·KT는 CEO리스크 계속
    "게임 체인저 될수도" 4통신사 위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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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고객정보 유출, 대표이사 선임 이슈로 통신업계가 시끄러운 가운데 정부가 과점체계에도 칼을 겨누면서 통신사들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제 4통신사 출현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지난해 약세장에서 배당 매력 등으로 ‘대피처’로 주목받던 통신주들의 전망이 어두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신업 과점 형태를 지적하고, 공익성을 강조하며 국민 요금 부담 경감을 주문한 이후 통신사 주가가 연일 하락 중이다. 17일 오전 SK텔레콤(SKT)은 최근 불거진 요금 규제 우려와 배당 성장률 정체 전망 등에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전날인 16일도 SKT, KT, LG유플러스 3사 모두가 전날 대비 주가가 하락 마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업계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상경제민생회의에 맞춰 SKT,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고객들을 상대로 3월 한 달간 대량의 데이터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여론 반응은 좋지 않다. 그 정도로 데이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고객도 드물뿐더러 일회성 지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통신업 과점 이슈가 최근만의 일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직접 압박에 나선 만큼 통신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비싼 통신비인 ‘5G 요금제’를 실질적으로 인하하는 방안 검토하고 있어 통신사들은 5G ‘중간요금제’ 신설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통신사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가운데 각 회사별 상황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LG유플러스는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과 거듭된 인터넷 서비스 장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LG유플러스가 미숙한 대응을 보이자 시장의 비난이 거세졌고, 16일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LG유플러스는 보안 역량을 강화하고 정보보호 투자액을 현재 3배 수준인 1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응에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LG유플러스는 해커가 불법정보사이트에 게시한 가입자 개인정보를 판매한다는 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을 파악하는 등 사이버 보안 부문에서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가장 심각하게는 LG유플러스가 고객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초기 상황에 대해 거짓·축소 설명을 내놓은 점이다. 해커(개인정보 불법 탈취·판매 행위자)와 직접 접촉한 적 없다던 애초 해명과 달리 LG유플러스는 해킹 증거 파일을 받기 위해 해커들을 접촉해 돈거래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시장 관계자들은 “해외에선 대형 소송감이자 대표이사가 책임지고 자리를 내놓아야 할 사건으로, B2C(기업-고객간 거래) 기업에는 치명적인 일”이라고 평한다. 사고 자체도 심각하지만 ‘거짓 해명’을 했다는 것은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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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도 구현모 대표 연임을 둘러싼 분란이 계속되고 있다. 구현모 KT대표의 연임을 결정했던 이사회가 결정을 백지화하고 차기 대표이사 선임 과정을 다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지적한 가운데 국민연금까지 문제를 제기함에 따른 조치다. 하나증권은 지난달까지 KT 주식 매수를 강력히 권하는 보고서를 다섯 차례나 냈으나 최근 “경영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KT 투자 비중을 줄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KT 내부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차기 대표이사가 결정이 나지 않아 내부 직원들 인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대표이사에 따라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이 대폭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업무가 ‘스톱’이고 투자 등 새로운 프로젝트는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해진다.

      목전의 문제도 부담이지만, ‘제4이동통신사’ 출현은 결정적인 장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통신 3사 독과점 체제인 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신규 사업자를 선정·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KT와 LG유플러스로부터 회수한 28기가헤르츠(㎓) 5G 주파수 대역의 800메가헤르츠(㎒)를 신규 사업자에게 싼값에 공급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2분기 중 주파수 할당 공고를 내고 4분기 사업자 선정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통신업 특성상 전국망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뛰어들 사업자가 많지 않다는 예상도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등 여러차례 제4 이통사 선정을 추진했지만 매번 자본력 부족으로 사업자 유치에 실패한 바 있다. 과기부는 여러 지원책을 내놓는 등 ‘진입 장벽’을 낮춰 시장 확대하겠다는 높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후보군으로는 유통, 플랫폼, 금융 등의 대기업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의 동향을 살피며 사업성 계산을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그중 쿠팡의 진출 가능성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쿠팡으로서도 검토를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유통에서는 확실한 우위 선점을 한만큼 국내에서 산업군을 추가할 숙제가 남았는데, 통신업은 규제산업으로 경쟁 강도도 낮고 수익성도 나쁘지 않다. 정부에서도 지원에 적극적인 입장이라 라이선스를 갖고 초기투자를 무리하게 하지 않아도 미래 수익성을 노려볼만 하다는 분석이다. 쿠팡은 자금 조달 여력도 나쁘지 않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쿠팡에 통신업이 국내에선 마지막 남은 ‘황금알’ 일거고, 유통에서 패러다임을 바꾸고 앞서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통신업 라이선스를 얻게 되면 추후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기존 통신사의 주식 매력은 크게 떨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