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가 디즈니플러스에선 나올 수 없었던 이유
입력 2023.03.29 07:00
    취재노트
    불투명한 오리지널 제작 관행에 업계서 뒷말 무성
    美 본사에서 감사 나서기도…"할리우드 방식" 무마
    디즈니+와 '깐부' 아크미디어, 카카오와 관계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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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역시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다” 송혜교-김은숙 작가의 만남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였던 드라마 ‘더 글로리’는 국내외에서 ‘대 히트’를 쳤다. 사이비종교 실태를 고발한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 수사당국이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씨의 추가 성범죄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씨의 ‘여신도 성폭력’ 재판 변호를 맡아온 법무법인은 변호인을 사임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걸그룹 아이브(IVE)의 컴백을 앞두고 앨범 예약 판매에서 신나라레코드를 제외했다. 신나라레코드는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과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다.

      넷플릭스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글로벌 구독자가 감소세로 전환하는 등 OTT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꺾이고 있지만 ‘그래도 넷플릭스’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비단 작품뿐이 아니다.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는 ‘디즈니플러스’와의 비교로 넷플릭스코리아의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론칭 전부터 ‘넷플릭스 대항마’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국내 OTT 시장에서, 자본력으로나 영향력으로나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로 꼽혔다. 하지만 기대만큼 구독자를 모으지 못했고 작품 흥행 면에서도 아쉬웠다. 올초 공개한 <카지노>가 호평을 받았지만 넷플릭스의 아성을 깨기엔 부족했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 부재, 마블 등 IP의 인기 부진 등의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디즈니플러스코리아가 히트작을 내지 못한 이유로 ‘불투명한 제작 구조’를 꼽는다.

      디즈니플러스코리아의 ‘제작 구조’는 업계 내에서 꾸준히 입길에 올랐는데, 그 중심에 드라마 제작사 ‘아크미디어’가 거론된다. 아크미디어는 2019년 설립된 드라마 기획 및 제작사로, 2021년 말 디즈니플러스 한국 상륙 이후 사실상 독점으로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을 줄줄이 제작했다. <그리드>부터 <키스식스센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카지노>, <사랑이라말해요> 등이 아크미디어를 거쳤다.

      아크미디어의 실적 대부분이 디즈니플러스에서 나온 셈이다. 회사가 강한 신뢰를 얻어 비즈니스를 연달아 성사시킨 사실 자체는 문제삼기 어렵다. 다만 통상 한국 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구조로 제작이 이뤄지면서 업계 안에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크미디어는 디즈니플러스와 연이 닿기 전에는 알려진 작품이 KBS의 <연모>, <오월의 청춘> 정도다. ‘글로벌 대형 OTT’의 오리지널 계약을 연이어 따낼 만큼의 존재감이 있는 업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력으로나 인지도로나 스튜디오드래곤과 같은 대형사가 아니다 보니 '한국 시장 상황에선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디즈니플러스코리아는 공개 입찰을 거치지 않고 아크미디어를 선정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러다 보니 업계에선 ‘아크미디어와 친해야만 디즈니 작품을 딸 수 있다’ 등의 소문이 회자되기도 했다. 아크미디어는 기획 및 제작, 콘텐츠 수출 및 배급, IP(지식재산권) 활용 비즈니스 등을 하는 종합제작사다. 아크미디어가 디즈니플러스코리아의 수주를 받으면 또 하위 제작사에 일감을 주기도 하는 구조다. 

      디즈니플러스가 오리지널을 제작할 때 아크미디어를 통해서만 업체를 선정하고 제작료를 정산하는 등의 구조를 만들자 오해가 쌓다. 거치는 단계가 늘어날 수록 정산 과정은 불투명해지니 프로덕션 제작사들 사이에서는 무려 ‘글로벌 OTT’인 디즈니플러스코리아와 일을 하기 꺼려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됐다. '넷플릭스가 투명하게 잘해왔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는 전언이 나왔다.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디즈니에서 아크미디어에 얼마를 주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제작사에는 ‘마진이나 먹고 빠지라’는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다들 디즈니와 일을 하고싶지 않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변변한 히트작도 없었으니 다 거절을 당하고 ‘갈 데가 없으면’ 가는 곳이 디즈니였다. 디즈니에서 ‘더 글로리’ 같은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탓인지 디즈니 미국 본사에서 디즈니플러스코리아 감사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는 ‘할리우드에서는 안정적인 제작 역량이 있는 제작사와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디즈니플러스코리아도 업계에 ‘할리우드에선 일반적이지만,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디즈니플러스코리아에서 오리지널 심사를 담당하던 지상파 방송국 출신 인사도 최근 퇴사했다고 알려지는데, ‘달라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아크미디어는 최근 다른 이유로도 시장의 이목을 모았다.

      지난달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공개매수에 나섰을 당시 한 기타법인이 IBK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30억원 규모 SM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집했다. 이 법인은 2019년 설립된 사모펀드(PEF)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820억 규모의 주식을 사들인 SPC(특수목적회사) 헬리오스제1호 유한회사도 원아시아의 투자 비히클로 추정되고 있다.

      원아시아는 코리아그로쓰제1호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 펀드가 아크미디어의 최대주주(지분율 50.47%)다. 이 펀드 자금의 출처는 대부분 고려아연이다. 원아시아의 지창배 공동대표가 아크미디어 회장도 맡고 있다. 아크미디어는 지 1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부터 2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에 등극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와의 관계가 있는 원아시아가, 카카오와 SM엔터를 두고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에, SM엔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의혹을 받은 셈이다. 이에 하이브는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한 시세조종 목적으로 의심되는 비정상 거래”라며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후 극적 합의로 카카오가 SM엔터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인수전에서 발을 빼게 됐지만, 금감원은 이와 별개로 시장교란 정황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위반혐의가 있는지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