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리스크發 '크레딧 성적표' 가장 먼저 받게 될 저축은행
입력 2023.06.09 07:00
    신평사, 저축은행 신용등급 하향 움직임
    상대적 위험한 브릿지론 비중 크게 높아
    증권·캐피탈은 이번 정평서 조정 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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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반기 신용등급 정기평가가 한창인 가운데, 올 하반기부터 저축은행의 신용등급 하향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의 직접 영향권에 놓인 금융업종 중 저축은행에 대한 조정이 가장 먼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사와 캐피탈사는 최근 PF대주단 협약 가동으로 손실이 이연됨에 따라 이번 정평에서는 등급조정을 피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신용평가 3사(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는 오는 30일까지 예정된 상반기 정기평가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등급 조정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부터 꾸준히 부동산PF 부실에 따른 크레딧 리스크가 제기된 금융사 중 저축은행의 등급 조정 움직임이 가장 먼저 포착되고 있다.

      한기평은 최근 오케이저축은행(BBB+)과 바로저축은행(BBB+)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아직 '액션'을 취하진 않았지만, 저축은행의 신용도 전망과 관련해 꾸준히 리포트를 내며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신용등급 하방 압력을 받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부동산PF 익스포저 비중이 꼽힌다. 특히 과도한 브릿지론 비중이 문제다. 브릿지론은 본PF가 구성되기 전 토지 매입 및 인허가를 받는 단계다.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면 브릿지론 대출 상환이 불가능한만큼 위험성이 크다.

      한기평이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 비중은 128%로, 증권사(9%)와 캐피탈사(2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저축은행이 익스포저가 높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토지담보대출 형태로 브릿지론으로 들어간 사업장이 기존 금융당국에 신고한 내역보다 많은 것을 확인했다"며 "더 이상 모니터링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정기평가 과정에서 등급 및 아웃룩 조정이 진행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이 대출을 실행한 PF사업장이 증권사나 캐피탈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준공 위험성이 높은 사업장이란 점도 등급 하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황보창 한기평 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브릿지론에서 본PF 단계로 넘어가면 시공사가 금융기관과 조달규모와 조달비용 등을 협상하는 대출의 당사자가 되는데, 각종 규제와 조달 비용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저축은행은 사업규모가 작은 PF현장이나 시공사의 신용도가 낮은 PF현장에 투자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기평 보고서에 따르면 시공순위 150위 이내의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는 현장은 증권사와 캐피탈사가 각각 79%, 84% 수준인 반면 저축은행은 1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 저축은행들은 최근 잇달아 증자를 진행하며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신용도 방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란 분석이다. 

      지난 12일 애큐온저축은행은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지난 3월에는 한국투자저축은행과 오케이저축은행이 각각 4200억원,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특히 오케이저축은행은 이미 지난해 9월 유상증자를 통해 1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한 바 있다. 두 번의 유상증자에도 신용등급 전망 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한기평은 오케이저축은행의 107.4%에 달하는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브릿지론 익스포저 비율과 중·장기적인 부동산 시장 경기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꼽았다. 1500억원의 유상증자로는 재무건전성 지표 저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단 뜻으로 풀이된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대손충당금도 착실하게 적립하고 있고 각 사별로 자산건전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봐달라"고 전했다.

      PF대주단 협약의 수혜를 받은 증권사와 캐피탈사는 만기가 연장되면서 PF리스크에 따른 손실이 현실화하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 등급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 14년만에 재가동한 PF대주단 협약은 브릿지론과 본PF의 만기를 연장하고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등 PF사업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선순위 대주가 협의체를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보니 저축은행보다 순위가 앞서는 증권사와 캐피탈사에 유리하게 대주단 협약 결정이 작용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최근 PF대주단 협약이 가동되면서 증권사와 캐피탈사의 경우 PF부실 위험성이 이연돼 연초 예상보다 드러난 손실액이 적다"며 "잠재적인 부실 위험성을 선반영해 신용도를 조정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