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파생상품 대규모 원금손실 우려…은행 판매수수료 욕심 탓?
입력 2023.08.07 07:00
    5대 시중은행 판매한 ELS 상품 잔고 37조원 돌파
    20~21년 판매한 H지수 연계 녹인 상품은 손실 확정
    녹인 비중 높인 KB국민, 투자자 손실 금액 클 듯
    금융사, 헷징 통해 손실 줄여…PB 영업행태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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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홍콩발(發) 증시 공포가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손실 청구서’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에서 판매하고 있는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 연계 파생상품의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홍콩H지수의 고점이었던 2021년경 은행에서 판매된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의 경우, 올해 10월과 내년 상반기 약 15조원 가량 만기가 몰려 있다. 그때까지 H지수가 6600선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판매사인 은행이나 개발사인 증권사는 헷징(손실 보전) 전략을 통해 건전성엔 문제가 없어,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로 귀결된다. 이를 두고 금융권 일각에선 은행의 영업 행태에 관한 지적도 나온다. 은행은 신탁 형태로 파생상품을 판매해 수수료만 취득하기 때문에, 은행 PB 입장에선 투자자들의 손실과 관계 없이 위험한 상품을 판매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까닭이다.

      4일 인베스트조선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이 판매한 ELT 상품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약 37조7200억원이다. 

      ELS 및 ELT는 만기일까지 주가지수 등 기초 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요건을 하회하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원금손실구간은 대부분 기준가의 50~55%에서 형성되고, 만기는 3년 이하다. 주가지수가 손실구간 밑으로 한 번이라도 내려가면 손해를 보는 ‘녹인’ 상품과, 만기 시점의 주가로만 평가하는 ‘노(No)녹인’ 상품으로 구분된다.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기준으로 1만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해 말 8000대까지 떨어졌고 현재 6000대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 출시된 녹인 상품의 경우 손실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균 삼성증권 ETP리서치팀 연구원은 “2023년 6월 말 기준으로 H지수가 6300선을 기록, 일부 상품은 최하단 조기상환 평가가격을 밑돌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며 “복수의 기초자산을 활용하였을 경우 가장 성과가 저조한 기초자산을 기준으로 평가 하는 ‘Worst-of’ 구조이므로, HSCEI가 Worst-of의 기초자산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만기 도래 시점까지 H지수가 8000선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ELS 중 일부는 손실 상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ELS 상품의 전체 규모는 약 13조6000억원 가량으로, 특히 2024년 4월에 만기가 몰려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약 2조원의 H지수 연계 ELS 상품이 녹인 구간에 진입, 이미 1조원 수준의 평가손실을 확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에서도 2010년대부터 전체 비중의 절반 가량을 녹인 상품으로 판매한 KB국민은행의 경우, 손실 비중이 더욱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H지수 흐름이 전월과 비슷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률 역시 40%에 육박한다.

      KB국민은행은 2010년대부터 지점수가 많은 점을 ELT 판매에 적극 활용해 왔다. 저금리 상황에서 예금의 대안을 찾는 리테일(소매) 고객들을 대상으로 KB국민은행 소속 PB가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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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를 두고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은행의 영업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무책임 영업’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불완전판매 여부와 관계 없이 개인은 대규모 손실을 보지만, 금융사들은 판매 수수료만 얻는 구조인 까닭이다.

      실제로 파생상품(ELS)을 개발하는 증권사 또는 해외 IB들은 델타 뉴트럴(양방향 헷징) 전략을 통해 대부분의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 부채로 인식되는 ELS의 상환을 대비해 변화량을 기준으로 증권을 처분하고 손실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5년 3분기에도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었던 지수가 급변동하면서 증거금이 늘어났으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진 적은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 변동성이 커진다면 더 높은 가격에 팔고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ELS 운용자들은 헷지로 수익을 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ELS 및 ELT 판매사인 시중은행의 경우 판매 수수료만 선취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판매사(은행)는 판매 수수료만 가져가기 때문에 책임 판매를 하기 어렵다”며 “위험한 상품은 PB 기준으로 판매 수수료가 더 비싼 편이다. 결국 판매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면서도 판매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ELS 손실이 커도 금융권에선 내부 문책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투자일임업이나 자문업처럼 어떤 투자상품을 판매해도 판매자가 책임감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