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경기 전망 암울…단기 상품 수요 증가
편법 운용 이슈 있던 랩·신탁은 회피
일부 기업, 아직도 랩·신탁 자금 회수 못해
-
머니마켓펀드(MMF)를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 회의적인 경기 전망에 일단 단기 상품에 돈을 옮겨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진 좀 더 나은 수익률을 위해 랩(wrap)ㆍ신탁 계좌에 자금을 담아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난해 환매가 이뤄지지 않아 '진땀'을 뺀 이후론 MMF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말 국내 MMF 총잔액은 182조3669억원으로 작년 말 151조5274억원 대비 20.4% 증가했다. 지난달 말과 비교해도 9% 늘어난 수치다. MMF 잔액의 대부분은 법인 자금이다.
금융당국이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해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선 이후 증권사의 랩·신탁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기업들은 자산운용사의 단기금융 상품인 법인형 MMF에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기업들은 단기 자금을 운용할 때 MMF보다 랩·신탁을 더 선호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랩·신탁은 현행법상 원금 보장형은 아니지만 증권사에서 예금이나 MMF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랩‧신탁은 단기 여유자금을 운용하려는 고객이 가입하며 보통 계약기간은 3~6개월이다. 그러나 고수익을 위해 일부 증권사에서 단기 자금을 장기 채권에 묻어두는 등 편법 운용이 있었다. 만기가 1~3년으로 길고 거래량이 적은 장기 기업어음(CP) 등 장기 채권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지난해 금리 급등기 만기 미스매칭으로 손실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특정금전신탁(MMT) 1일 물 자금도 6개월짜리 CP에 넣어서 운용하는 게 다반사였다. 미스매치 전략을 쓰지 않으면 환급을 위해 1일짜리 환매조건부채권(Repo), 자산관리계좌(CMA) 등 수익률이 낮은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만기 때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한 파킹거래는 알음알음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할 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고 유동성이 막히자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하반기 시장 금리가 급등하며 증권사는 장기채 평가손실로 많게는 수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증권사가 스스로 손실을 떠안고 기업들에 원금을 내주기도 했다.
법인 고객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증권사에 환매 요청을 했으나 아직도 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MMF는 규제가 까다로운 만큼 상대적으로 환매 대응이 수월하다. 모두 단기 상품이지만, 랩·신탁은 MMF와 달리 가중평균 잔존만기(듀레이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법인형 MMF의 경우 60일(장부가 평가 방식), 120일(시가 평가 방식)일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법인 MMF에 돈이 몰리는 건 기업들이 향후 경기를 회의적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MMF에 일단 돈을 옮겨두고 투자 기회를 엿보는 기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랩·신탁 이슈는 시장 금리가 내려가야 완벽히 해소될 문제"라며 "당분간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작고 경기는 계속 어려울 전망이라 MMF 총잔액 규모는 커지거나 최소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