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충당금 적립 요구에…주주와 당국 사이 눈치보는 은행들
입력 2023.09.01 07:00
    당국, PD·LGD 값 은행과 조정하며 충당금 추가 적립 요구
    고금리에도 대출 늘며 호실적 전망 나오는 은행권
    보수적 충당금 적립으로 이익 조정·리스크 대비 '일거양득'이지만
    주주환원에 당국과 주주 사이서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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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으라'는 금융당국의 권고 아닌 권고가 내년 초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당국의 압박을 도리어 반기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고금리 속 이어지는 호실적에 여론 눈치를 살피는 은행에게 충당금이 높은 실적을 감출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탓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주주환원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금융지주들이 배당 재원인 순이익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함께 나온다. 결국 당국과 주주 사이에서 눈치 보며 충당금을 적립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은행지주들이 주택 관련 대출 증가로 '의외의 호실적'을 기록한 상반기 실적 시즌 이후, 금융당국은 각 은행들과 하반기 충당금 규모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던 터라 취약차주가 (현재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며 "급격히 금리가 오른 작년 이후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 세부 값을 어떻게 조정할지 각 은행들과 협의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PD(부도율) 및 LGD(부도 시 손실률) 값 조정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협의 후 충당금 적립 규모를 확정하고 있다. 현재 논의의 초점은 PD·LGD가 과거 경험률을 바탕으로 산출되는 데이터인 만큼 실제보다 낙관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맞춰지고 있다. 사실상 하반기에는 더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으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은행 일각에선 이런 압박이 싫지만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고금리 상황 속 이자 장사를 벌인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까닭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올해도 시중은행들이 호실적을 달성할 것이란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2분기에 순이자마진(NIM)이 최고점을 찍고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 KB·신한·농협금융이 개선된 NIM을 기록하며 우수한 수익성을 보였을 뿐 아니라 주택경기 개선에 따라 가계대출도 증가하며 여신 규모가 커지는 등 은행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데 따른 관측이다. 

      이런 분위기 속 당국의 압박은 대규모 충당금 적립을 통한 실적 감추기에 좋은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신평사 한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 속에서도 여신이 늘고 있고 높아진 조달금리가 대출금리에 잘 전가되는 상황이라 NIM과 더불어 이익이 계속 증가할 전망이라 은행 입장에선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내부에선 돈 잘 벌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알리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도 "현재 은행들은 이익이 워낙 많이 나는 상황이라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고금리 기조에서 실적이 너무 잘 나와 또다시 '약탈적 영업' 프레임이 씌워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리스크 대비 차원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내년 총선 전까지 충당금을 대폭 쌓으라는 당국의 주문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부동산 PF를 비롯한 금융권 폭탄이 총선 전에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보통 상반기 기준으로 브릿지론에서 본 PF로 300여건 전환되는데 올 상반기에는 전환된 사업장이 한 자릿 수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금리와 원자재값이 내려가야 PF 시장이 정상화될 텐데 단기간 내 어렵다는 것을 은행들도 알고 선제적으로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주들과의 관계 설정이 변수다. 주요 은행지주들은 지난해부터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대손을 늘려 배당 재원인 순이익을 줄여버리면 자연히 배당 등 주주환원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주주환원 이야기를 계속 해왔던 만큼 리스크 관리에만 초점을 맞출 수만은 없을 것"이라며 "금융지주의 주식회사로서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당국과 주주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올 상반기 기대 이상의 실적이 나왔던만큼, 주주들의 배당ㆍ자사주 매입 소각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질만큼 높아진 상태다. 주요 금융지주들도 '최고 30% 이상'의 주주환원율을 경쟁적으로 외치며 배당 및 자사주 매입 확대를 외쳐왔다.

      개인대출 부문의 호조로 기대 이상의 영업수익이 나온 상황에서, 여론과 금융당국만을 염두에 두고 보수적으로 쌓았다간 주주들의 반발과 주가 하락에 직면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코로나 금융지원 정책이 9월 종료되면 시차를 두고 은행 연체율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각 은행별로 예상 손실을 추정해 하반기에 일제히 대손충당을 반영하게 될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나오는 주주환원율이나 시가 대비 배당수익률 등은 연말로 갈 수록 악화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금융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