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확실성 남아있는 채권 시장
만기 긴 CP 발행 더 어려워져…발행금리도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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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앞둔 지금, 올해 기업어음(CP) 발행 시장이 유독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기관들은 연말 환매 이슈 등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성향이 짙어졌다. 만기가 연내인 3개월물은 수요가 있지만, 내년으로 만기가 넘어가는 CP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매년 연말이 가까워지면 수요가 줄어들어 CP 발행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연말에 기금 환매 등 자금 소요 이슈가 몰려있다 보니 자금이 CP에 묶이는 걸 '경험적'으로 꺼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퇴직연금 이슈가 있다. 관행적으로 기업의 퇴직연금이 집중 납입되는 12월, 금융사 사이 적립금 유치 경쟁으로 급격하게 '머니무브'가 발생한다. 단기간에 수십조원대 채권 매도 물량이 쏟아져 채권 시장에 자금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업도 연말에 자급 집행 수요가 커진다. 기일이 돌아오는 어음을 막거나 대출 이자를 내고 연말 상여금·성과급에 돈이 들어간다.
금융기관의 경우 연말에 운용 평가가 몰려있어 위험을 회피하고자 자금 집행을 미루기도 한다. 특히,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물건에 대한 수요가 떨어진다. 내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굳이 서두를 필요 없다는 인식도 강하다.
그런데 올해는 연말 효과 기조가 유독 강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레고랜드 사태의 트라우마를 원인으로 꼽는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하반기 자금 시장에 경색 위기가 찾아왔다. CP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CP 등 단기자금을 투자한 상품에서 환매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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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다. 국내외 경제 정세를 살펴보면 아직 채권 시장의 불확실성이 걷혔다 보기 어렵다는 시선이 있다. 언제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터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CP의 경우는 그나마 발행이 되는 편이지만, 만기가 내년으로 넘어가는 CP는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발행사는 연말에 자금 조달이 어려울 거란 판단에 장기 CP를 발행하려는 수요가 높지만, 정작 받아주는 기관이 없다는 설명이다.
주관사는 만기가 내년인 CP의 발행금리를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CP보다 20~30bp(1bp=0.01%)가량 높게 부르기도 한다. 이에 CP 발행 계획을 앞당기는 기업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 금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졌으며, 3개월 만기 CP는 몰라도 내년까지 넘어가는 건 기피하고 있다"며 "3년물과 1년물의 금리 차이도 크게 벌어질 정도로 장기물 매력도가 떨어진 상황이다"고 말했다.
작년과 같이 단기자금 환매 사태가 벌어지면 금융기관의 유동성에 부담이 된다. 증권사는 환매 요청에 대응하려면 신규 유입된 자금으로 환매하거나 금융상품에 담긴 자산을 매각해 돈을 돌려줘야 한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지 않는 대신에 기존 기금에서 자금을 끌어 쓸 거란 이야기도 들린다"며 "대부분 단기 채권 상품에 자금이 들어있다 보니 연말에 환매 수요가 불거질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