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인정받는 사업장 먼저 '회수'
금융당국과 소비자에 "우리는 문제 없다" 시그널 목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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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서 브릿지론 만기 연장이나 본PF 전환하지 않고 대출금 회수에 나선 대주단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PF 대출 위험노출액(익스포저)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는 분위기에서 자금 회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이다.
대주단들이 회수가 비교적 용이한 '정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회수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대주단 사이에선 '자금 회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업성을 인정 받는 사업장의 자금도 회수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공매에 나오는 현장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 공공자산 처분 시스템온비드에 따르면 올해 11월 10일까지 부동산 공매 건수(공고 기준)는 1862건으로 작년 한 해(725건) 대비 이미 두 배를 넘어선 상태다.
최근엔 서울시 양천구의 한 아파트 개발 사업장에서 대주단이 만기가 도래한 브릿지론을 본PF로 전환하지 않기로 했다. 대주단은 담보 토지의 경·공매 및 재매각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앞서 서초구 주상복합아파트 현장은 공매에 나왔다. 5월 말 시공사인 신일이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을 신청하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공정률이 45% 선에서 올 6월 2일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이 현장의 감정가는 약 616억 원으로 11월 13일 공매가 개시된다.
수도권에 위치한 사업장이나 아파트 개발 사업장이 양호한 사업장으로 꼽힌다. 특히 서울 사업장의 경우 사업비에서 공시지가(땅값)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자금 회수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하이엔드급 주상복합 사업장인 '르피에드 청담'의 경우 선순위 투자자인 새마을금고는 투자금 전액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르피에드 청담은 지난달 새마을금고의 반대로 만기연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는 총 464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에서 1800억원의 자금을 선순위로 대출했다. 현재 땅 가치는 약 2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6월말 기준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1.8%를 기록했다. 금융업권 전반적으로 부동산 PF 대출 익스포저에 부담이 큰 상황에서 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단 평가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단 지적이다. 금융당국과 예금자에게 "부동산 PF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우리는 회수를 잘하고 있으며 문제가 없다"는 시그널을 주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PF 대주단이 '악성 사업장'을 제외하고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만 자금을 투입한다던 올해 4월 협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당시 브릿지론 단계에서 시공사를 찾지 못한 사업장은 '악성'으로 분류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하거나 회생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오피스텔·생활형숙박시설·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 등 비(非)주택 사업장이나 지방 사업장은 브릿지론을 연장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지역과 상관없이 상업용 부동산은 경·공매에 나오거나 대출채권이 거래되는 조짐이 거의 없다고 전해진다. 경·공매를 진행하던 사업장도 팔리지 않아 대주단이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 사실상 '올스톱' 상황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울 사업장은 브릿지론을 연장해도 땅값이 비싸 자금 회수가 가능하지만 지방 사업장은 회수가 어려우니 우선 서울 사업장부터 회수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며 "금감원조차 PF 위험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대주단의 전략적 회수 움직임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