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연기금 주목하는 코인 시장…韓 기관은 당분간 미온적 행보 예고
입력 2023.11.28 07:00
    비트코인 1년 7개월만 5000만 돌파…현물ETF 승인 기대감
    글로벌 기관 자금 유입세↑…선물 미결제 규모 역대 최고치
    NPS·KIC 美코인베이스 투자…"코인 아닌 BM 종목 투자한 것"
    韓기관들은 아직 미온적…업계선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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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비트코인이 최근 5000만원을 넘어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에 무게가 실리며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유입돼 가격 상승을 이끌었단 분석이다.

      국내 기관들 사이에서도 코인 관련주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움직임이 감지되지만, 본격적인 투자에 뛰어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500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이 5000만원 선을 넘어선 건 지난해 4월 이후 약 1년 7개월여 만이다. 비트코인은 올해 들어서만 약 2배 넘게 상승했는데, SEC의 비트코인 현물ETF 승인 기대감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현재 비트코인 선물ETF는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지만, 현물ETF는 SEC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항소법원 재판부가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SEC를 상대로 낸 현물ETF 전환 반려 소송에서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주며 상황이 반전됐다.

      당시 법원은 "SEC가 비트코인 선물 ETF는 허용하면서 현물 ETF 신청은 거부한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피델리티, 아크인베스트 등이 SEC에 비트코인 현물ETF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SEC의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ETF가 승인되면 운용사들은 실제로 비트코인을 매입해야 하고, 기관투자가들은 비트코인 투자가 용이해진다. 

      기관투자가의 비트코인 시장 자금 유입도 늘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 약정 규모가 올해 10월 35억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호황기였던 2021년 기록한 최고치를 경신한 수치다. 투자 규모가 큰 기관투자가들은 일반적인 코인 거래소가 아닌 CME에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도 가상화폐 관련주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연금이 SEC에 제출한 주식 보유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3분기 코인베이스 주식 28만2673주를 신규 취득했다. 코인베이스는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다. 한국투자공사(KIC)도 현재 코인베이스 주식 1만8118주를 보유하고 있고, 3분기에는 미국 주식 및 코인 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의 주식 11만8991주를 신규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다만 두 기관 모두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KIC 관계자는 "코인베이스 투자는 KIC의 벤치마크(BM)인 MSCI ACWI 지수 내 편입된 종목에 대한 투자일 뿐이며, 해당 종목은 퀀트(계량분석) 기법에 따른 투자였다"며 "로빈후드 역시 최근 코인 거래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주식 거래가 주요 사업인 플랫폼이기에 코인에 대한 투자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SEC가 비트코인 현물ETF를 승인해 기관의 가상화폐 투자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지더라도 국내 기관들이 실제로 투자를 하는 데 까지는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반적인 주식이나 부동산 등 대체투자는 자산의 본질적인 가치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투자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는 엄밀히 말해 적정 가치를 알 수 없고 오직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기에 기관이 당장 투자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 공제회 주식운용역도 "당분간 가상화폐와 관련해 직접이든 간접이든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 없다"며 "비트코인이라고 하는 건 연계돼 있는 경제 상황이나 산업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기관들도 섣불리 투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를 일종의 도박과 동일시하는 국민정서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가상화폐 투자를 망설일게 할 요인으로 꼽힌다. 일례로 2년전 한국교직원공제회가 비트코인 관련 ETF 투자에 나섰단 소식이 전해져 한 차례 홍역을 앓기도 했다. 교직원공제회는 당시 "비트코인 ETF 투자를 검토한 적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고, 현재까지도 관련 투자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글로벌 연기금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는 추세에 있고,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인플레이션 헷지(hedge) 효과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기관들이 무작정 가상화폐 시장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주간 동향 보고서를 통해 "예일대 기금이 포트폴리오의 3%를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는데 비해 국민연금이 코인베이스에 투자한 금액은 800조원을 넘는 총 운용자산의 0.0000325%에 불과하다"며 "자산 포트폴리오의 유의미한 가성비 개선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은 가상자산 관련 투자 규모를 더욱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직 가상화폐에 대한 내부 스터디가 되지 않은 것도 클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주식, 부동산 등 시장의 변동성이 큰 상황이 올 때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리스크 헷지 등을 위해서라도 가상화폐 투자를 고려해야할 때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